미 버지니아공대 총기 참사 사건의 범인인 조승희씨가 중ㆍ고교 시절 수줍음과 이상한 말투, 발음 등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민 1.5세대로 언어문제 등에서 미국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을 학창시절에 ‘왕따’를 당했다는 것은 조씨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겪었을 인종차별의 희생자였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총기난사 사건을 저지르기까지 조씨의 비정상적 정신상태와 사회에 대한 적개심 등은 조씨가 NBC 방송에 보낸 소포의 내용물 등을 통해 많이 알려진 상태다.
그러나 병적으로 왜곡된 심리가 인종차별에 의해 형성됐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확인될 경우, 다인종 사회인 미국내에서 파급력이 훨씬 강한 새로운 논란이 촉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AP 통신 등에 따르면 조씨는 학교에서 결코 입을 열지 않았고 대화를 거부했으며 영어수업 시간에 조롱을 받는 등 따돌림을 당했다.
조씨의 웨스트필드 고교 동창생인 크리스 데이비드는 “조씨가 영어수업 시간에 소리를 내서 크게 읽어야 할 때에도 고개를 떨구고 아래만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다 선생님이 낙제 점수를 주겠다며 다그치고 나서야 조씨는 마치 입안에 뭔가 물고 있는 것처럼 이상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데이비드에 따르면 이때 학급 동료학생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면서 심지어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야유를 퍼부은 적도 있다는 것이다.
조씨를 중국인으로 여기고 이 같은 야유를 했다는 것은 미국내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차별로 해석될 소지가 충분하다.
조씨와 웨스트필드 고교 졸업반을 함께 다녔던 스테파니 로버츠는 고교 시절 조씨를 괴롭히는 동료 학생들을 보지 못했다고 부인했지만 중학교 때에는 적잖은 조롱을 당했다고 전했다.
로버츠는 조씨의 중학교 생활에 대해 “친구들이 그를 떠밀고 비웃는 것을 봤다”면서 “조씨는 영어를 썩 잘하지 못했는데 그것 때문에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인종차별로 받아들였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조씨가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 때문에 정신적으로 치유하기 어려운 충격이 누적됐을 개연성은 높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 않았던 학창시절은 더욱 조씨의 정신세계를 피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조씨가 자각을 했든 아니든 인종차별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드러난 조씨의 발언이나 글을 통해 그것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적은 없다.
NBC 방송에 보낸 글이나 동영상 가운데에도 공개된 부분에서는 최소한 인종차별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NBC 방송이 자체 논의과정을 통해 미공개키로 한 부분에 조씨의 심리상태나 범행동기와 관련된 어떤 다른 판단 근거가 있는 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씨의 글에 이 같은 인종차별적 상황에 대한 주장이 포함됐을 개연성이 다분하지만 NBC 방송측에서 인종차별 논란의 폭발성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다만 조씨가 직접 언급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까지 정황상의 판단만으로 섣불리 인종차별 논란을 유발하는 것은 이번 사건을 또 한번 왜곡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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