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총격 참사사건의 범인 조승희씨가 ‘순교사건’으로 묘사했던 컬럼바인고교 총기난사 사건이 20일 8주년을 맞았다.
악몽을 잊고 싶은 유족들은 이날 추모식 등 별도 기념행사를 열지 않았고, 학교도 하루 휴교하는 것으로 기념식을 대체했다.
버지니아공대 사건으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는데, 다시 아픈 과거를 끄집어내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컬럼바인고교 총기 난사사건은 1999년 4월20일 콜로라도주 리틀턴시에 있는 이 학교 안에서 발생했다. 평소 ‘트렌치코트 마피아’로 자칭했던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가 900여발의 총알을 마구 쏘아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죽이고 자살했다.
미국은 고교생의 광란으로 패닉상태에 빠졌다. 이로 인해 총기규제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총기업자들의 로비로 유야무야 됐고, 이번에 다시 버지니아공대 참사 사건이 터지는 비극을 맞았다.
컬럼바인 사건을 잊으려 애써온 유족들은 조씨가 방송사에 보낸 기록물에서 해리스 등 범인들을 ‘순교자’라고 하자 섬뜩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프랭크 디앤절리스 컬럼바인고 교장은 덴버지역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버지니아공대 참사사건을 보면서 그 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됐다”며 “구역질이 날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당시 누나를 잃었던 크레이그 스콧도 “수많은 감정이 거품처럼 솟아났고 충격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고 혼란스러움을 드러냈다. 사건 당시 컬럼바인고교에 재직했던 빌 비스컵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고 어느 순간 울어버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족 중 일부는 유사사건 재발을 위해 해리스 등 범인들과 가족에 대한 조사기록 공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컬럼바인 참사 때 딸을 잃은 돈 애너 등은 범인들이 범행계획을 사전에 웹사이트에 올리고 심지어 법원에서 자실 및 살인 충동이 있다고 진술까지 했음에도 범행을 막지 못했다며 문제 인물에 대한 치료 등 사전 조치가 취해지도록 모든 정보가 낱낱이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두 소년의 범행계획 비디오 등의 공개에 대해 “유사한 참극 예방을 위한 공익적 측면도 있지만 모방 범죄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20년간 공개하지 못하도록 판결했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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