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훈련소에서 처음 써봤던 방독면.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은 그 답답함을 기억 한 켠에 간직하고 있다. 만약 방독면을 쓰고 하루, 아니 1시간 동안만 생활하라면 돈을 주고라도 거절하고 싶다.
그런데 이에 버금가는 불편함으로 삶을 위협받고 있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이하 COPD) 환자들이 45세 이상 성인 10명 중 2명에 육박한다. 얼마나 불편하길래 환자들은 ‘빨대 한 개로 숨을 쉬는 기분’이라고 표현할까. 암도 고친다는 세상이지만 이 병은 아직 근본적인 치료법도 없다. 하루 빨리 담배를 끊는 것만이 예방책이다. 천하의 애연가라도 이쯤 되면 금연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COPD, 죽음에 이르는 '숨찬 병'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병, COPD는 만성기관지염이나 폐기종에 의해 기도가 서서히 막히는 이른바 ‘숨찬 병’이다. COPD가 무서운 것은 폐 기능이 50% 이상 손상되기 전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가 막히다가 병원에서 COPD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미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기 쉽다.
게다가 아직까지 근본적인 치료방법도 없다. 박성수 한양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폐는 다른 장기와 달라 한 번 손상되면 회복할 수 없어 조기진단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COPD 치료제라고 해도 약효가 지속하는 동안만 기도를 넓혀 증상을 개선시킬 뿐”이라고 설명했다. 약을 사용해도 쪼그라든 기도를 원상 복구해 영구적으로 치료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 세계 사망원인 4위
‘숨 차다고 죽기야 하겠냐’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죽는다. 그것도 많이 죽는다. 세계적으로 볼 때 COPD는 사망원인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사망원인 3위, 장애원인 5위로 뛰어오를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COPD로 인한 사망자는 1983년 1,229명에서 2004년 5,464명으로 20년 만에 5배 가까이 늘었다.
▦ 담배가 주 원인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담배’를 COPD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환자의 80~90%가 과거 흡연경력이 있다는 통계 자료가 이를 뒷받침한다. 일반적으로 COPD는 하루 1갑 이상 20년간 담배를 피운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
담배만큼 위험하지는 않지만 역시 호흡기병이므로 ‘공기의 질’도 중요하다. 석탄 석유 등이 탈 때 나오는 이산화황과 이산화질소, 플라스틱 공장에서 나오는 카드뮴 이산화규소 같은 화학가스도 폐기능을 손상시키는 주범이다. 직장과 가정에서 실내 공기를 깨끗이 유지하는 것도 폐건강에 큰 도움이 되겠다.
박성수 교수는 “본인의 흡연은 물론 주위 사람이 피우는 담배연기도 해로울 수 있으므로 담배연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면서 “말하기와 걷기가 평소와 달리 힘들어졌다면 COPD가 중기까지 진행한 것일 수 있으므로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담배를 끊고, 실내 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나와 가족, 동료들의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다.
* 용어 설명
만성기관지염= 특별한 원인 질환이 없는데도 기침을 지속적으로 유발하는 병. 1년에 3개월 이상 가래 섞인 기침을 하며, 이런 증상이 2년 연속 지속한다. 기도의 청정기능이 손상돼 가래가 많이 생기는데다 병원균에 감염되면 누런 가래와 더불어 호흡곤란 증상을 유발한다.
폐기종= 비정상적으로 확장된 허파 꽈리의 벽이 파괴되는 병. 허파 꽈리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탄력을 잃고 늘어지면서 기도가 손상돼 부분적으로 기관지 폐쇄를 일으킨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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