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총기사고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 23세의 한국 교포학생이 총기를 난사해 32명을 죽이고 30여 명을 다치게 한 후 자살한 이 끔찍한 사건에서 우리가 받은 충격은 매우 복합적이다.
범인이 조승희라는 한국학생으로 밝혀졌을 때 우리는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라는 비명을 계속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참혹한 사건에 대한 공포와 분노,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 범인이 우리 동포라는 수치심까지 범벅이 되어 충격을 다스리기 어려웠다.
● 15년 전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그렇게 괴로운 며칠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15년 전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한국을 떠났던 한 가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서울 창동의 반지하 셋집에 살다가 초등학생인 남매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갔던 조씨 일가의 비극이 가슴을 때린다.
조씨 부부는"자식들 교육을 위해" 이민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사장과 세탁소 등에서 일하며 남매를 대학에 보냈던 그들의 꿈은 산산이 깨졌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희생자를 낸 학내 총기사건의 범인이 아들이라니, 잘 가르치려고 미국까지 데리고 온 아들이 남의 집 귀한 자식들과 교수님들을 32명이나 쏴 죽였다니, 그 청천벽력같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어떤 나라, 어떤 사회에서도 병적인 잔혹한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정신병자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엄청난 사고를 저질러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한다. 미국의 법의학자 마이클 웰너는 방송 인터뷰에서 "조승희는 소외감에 시달리는 편집증적 정신분열증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
총기 난사범은 대개 소외감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고립감이 파괴적 환상을 품게 하고, 적대감과 분노도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조승희가 동족이라는 사실에 얽매이지 말고 그를 객관화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객관화하려 해도 그가 우리의 동족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조씨 일가의 불행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은 한결같이"자식들 교육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민 뿐 아니라 수많은 학생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있다. 가족 해체를 무릅쓰고 조기유학을 보내는'교육난민'까지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미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내는 나라로 그 숫자가 10만 명에 이른다.
한국의 교육은 희망을 주기보다 부담과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교육의 천국일까. 우리 학생들을 미국에 보내면 좋은 교육제도에 잘 적응하여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유능한 인재로 키워질까.
성공하는 행복한 학생들도 많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숫자는 실패하고 있다. 한국에서보다 더 치명적인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될 가능성도 높다. 성공은 눈에 띄게 빛나고, 실패는 그늘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 조승희에 대한 섬찍한 분석
조승희에 대한 정신분석에는 섬찍하게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부분이 많다. 대학생이 다중살인의 폭력적 환상을 제어하지 못할 만큼 어느 단계에서 정신적 성장이 정지됐다는 지적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소외감과 그로 인한 폭력적 환상, 폭발직전의 적개심도 외국유학, 특히 조기유학에서 우려되는 점이다. 부모는 자식 교육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만 하고, 자녀는 떠돌면서 점점 더 가정과 멀어지는 것이 많은 교포 학생들과 유학생들의 현실이다.
너무 극단적인 사건에서, 정신분열증 환자인 범인과 비교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 영주권을 가진 조승희를 왜 한국인이라고 하느냐는 식의 논란이 아니다. 조씨 일가의 아메리칸 드림, 그 불행한 종말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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