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공양한 어머니를 탓하며 죽는 아이는 혜공왕을 상징합니다. 어머니는 오라비와 더불어 혜공왕을 쥐락펴락 섭정했던 대비(大妃) 만월부인이죠. 에밀레종 전설은 혜공왕을 동정하고 외척 세력을 비난한 정치고발 설화입니다.”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 등의 연구서를 쓴 사학자 성낙주(서울 중계중학교 교사ㆍ54) 씨의 해석이다. 성씨는 최근 에밀레종, 즉 성덕대왕신종을 둘러싼 설화에 독특한 해석을 가한 논문 두 편을 발표했다. 종이 만들어졌던 통일신라는 살생을 금기로 여기는 불교 사회였던 만큼, 설화의 중심 주제인 인신공양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석굴암,>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성씨는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의 설화 채록본까지 찾아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채록본을 수집, 종합해 에밀레종 설화의 원형을 재구성했다. 이에 따르면 봉덕사에 바칠 큰 종 제작에 거듭 실패하는 오라비를 위해 과부가 아이를 제물로 내놓는다.
오라비는 봉덕사 승려의 설득으로 결국 아이를 도가니에 던져 종을 완성한다. 그러자 아이의 사촌인 또 다른 아이가 자결한다. 종을 칠 때마다 ‘어미 탓이야’라는 뜻의 ‘에밀레’ 소리가 들린다.
성씨는 원형 설화 속 가계도가 종이 완성됐던 혜공왕 대의 왕실 가계도와 고스란히 겹친다고 지적한다. 만월부인(과부)과 김옹(오라비)이 불교계(승려)와 결탁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와중에 혜공왕(아이)이 정치적으로 희생 당했다는 얘기로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럼 죽은 아이를 동정해 따라 죽은 사촌은 누구인가.
혜공왕과 외척 세력이 정적에 희생 당한 후 무주공산이 된 권력을 차지한 김양상, 즉 선덕왕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성씨는 선덕왕이 혜공왕을 끝으로 몰락한 신라 중대(中代) 왕실에 대한 계승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기존 학설과 다른 입장을 밝힌다.
인신공양설, 효행담설, 종소리의 음운 상징설 등 그간의 에밀레종 전설 해석에 대한 성씨의 비판은 매섭다. 영문도 모르고 죽은 아이를 놓고 효를 논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처의 음성을 닮았다는 종소리가 어떻게 ‘에밀레’로 들릴 수 있느냐는 것. 성씨는 “설화 연구를 할 때는 텍스트가 지닌 고유한 의미를 따져야 하는데, 그간 학설은 기호학적 접근이나 캐릭터 분석 없이 인상비평에 머물렀다”고 지적한다.
신라종에 대한 성씨의 지적 도전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에밀레종 논문과 더불어 그는 <신라종 양식의 용종(甬鐘)기원설 비판> 이라는 도발적 논문을 발표했다. 신라종>
용종은 중국 주(周)왕조부터 전국시대까지 생산됐던 종으로, 종 윗부분에 원통형 자루가 달린 것이 특징이다. 용무늬 고리와 대나무 모양 원통으로 윗부분이 장식된 신라종 양식의 기원을 중국 용종에서 찾는 이론이 성씨가 문제 삼는 용종기원설이다. 비판 요지는 간결하다.
용종은 전국시대에 단종된 후 18세기에 와서야 출토됐으므로, 전국시대와 1,000년 가량의 시차가 있는 통일신라 때는 용종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다는 것.
21일 신라사학회 정기발표회에서 성씨는 <신라종 양식의 기호학적 해석> 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신라종을 장식한 비천, 36개의 연꽃, 대나무 피리를 짊어진 용은 각각 하늘, 땅, 바다를 뜻하며 전체적으로는 “소리로 세상을 다스려라”는 문무왕의 신탁, 즉 만파식적을 형상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성씨는 귀띔한다. 신라종>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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