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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주씨 “에밀레종 이야기, 외척 고발한 정치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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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주씨 “에밀레종 이야기, 외척 고발한 정치설화”

입력
2007.04.1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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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공양한 어머니를 탓하며 죽는 아이는 혜공왕을 상징합니다. 어머니는 오라비와 더불어 혜공왕을 쥐락펴락 섭정했던 대비(大妃) 만월부인이죠. 에밀레종 전설은 혜공왕을 동정하고 외척 세력을 비난한 정치고발 설화입니다.”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 등의 연구서를 쓴 사학자 성낙주(서울 중계중학교 교사ㆍ54) 씨의 해석이다. 성씨는 최근 에밀레종, 즉 성덕대왕신종을 둘러싼 설화에 독특한 해석을 가한 논문 두 편을 발표했다. 종이 만들어졌던 통일신라는 살생을 금기로 여기는 불교 사회였던 만큼, 설화의 중심 주제인 인신공양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성씨는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의 설화 채록본까지 찾아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채록본을 수집, 종합해 에밀레종 설화의 원형을 재구성했다. 이에 따르면 봉덕사에 바칠 큰 종 제작에 거듭 실패하는 오라비를 위해 과부가 아이를 제물로 내놓는다.

오라비는 봉덕사 승려의 설득으로 결국 아이를 도가니에 던져 종을 완성한다. 그러자 아이의 사촌인 또 다른 아이가 자결한다. 종을 칠 때마다 ‘어미 탓이야’라는 뜻의 ‘에밀레’ 소리가 들린다.

성씨는 원형 설화 속 가계도가 종이 완성됐던 혜공왕 대의 왕실 가계도와 고스란히 겹친다고 지적한다. 만월부인(과부)과 김옹(오라비)이 불교계(승려)와 결탁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와중에 혜공왕(아이)이 정치적으로 희생 당했다는 얘기로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럼 죽은 아이를 동정해 따라 죽은 사촌은 누구인가.

혜공왕과 외척 세력이 정적에 희생 당한 후 무주공산이 된 권력을 차지한 김양상, 즉 선덕왕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성씨는 선덕왕이 혜공왕을 끝으로 몰락한 신라 중대(中代) 왕실에 대한 계승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기존 학설과 다른 입장을 밝힌다.

인신공양설, 효행담설, 종소리의 음운 상징설 등 그간의 에밀레종 전설 해석에 대한 성씨의 비판은 매섭다. 영문도 모르고 죽은 아이를 놓고 효를 논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처의 음성을 닮았다는 종소리가 어떻게 ‘에밀레’로 들릴 수 있느냐는 것. 성씨는 “설화 연구를 할 때는 텍스트가 지닌 고유한 의미를 따져야 하는데, 그간 학설은 기호학적 접근이나 캐릭터 분석 없이 인상비평에 머물렀다”고 지적한다.

신라종에 대한 성씨의 지적 도전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에밀레종 논문과 더불어 그는 <신라종 양식의 용종(甬鐘)기원설 비판> 이라는 도발적 논문을 발표했다.

용종은 중국 주(周)왕조부터 전국시대까지 생산됐던 종으로, 종 윗부분에 원통형 자루가 달린 것이 특징이다. 용무늬 고리와 대나무 모양 원통으로 윗부분이 장식된 신라종 양식의 기원을 중국 용종에서 찾는 이론이 성씨가 문제 삼는 용종기원설이다. 비판 요지는 간결하다.

용종은 전국시대에 단종된 후 18세기에 와서야 출토됐으므로, 전국시대와 1,000년 가량의 시차가 있는 통일신라 때는 용종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다는 것.

21일 신라사학회 정기발표회에서 성씨는 <신라종 양식의 기호학적 해석> 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신라종을 장식한 비천, 36개의 연꽃, 대나무 피리를 짊어진 용은 각각 하늘, 땅, 바다를 뜻하며 전체적으로는 “소리로 세상을 다스려라”는 문무왕의 신탁, 즉 만파식적을 형상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성씨는 귀띔한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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