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장사로 번 돈을 재투자하는 것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면서 내부에 축적된 현금이 자본금의 6배를 넘었다고 한다.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이른바 유보율이 600%를 넘었다는 것은 재무안정성이 그만큼 강화됐다는 뜻이니,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굴지의 대기업마저 수익성 하락에 고전하는 등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우리 경제의 처지가 날로 군색해지고 있는데도, 신사업 발굴이나 투자보다 금고에 돈 쌓기를 우선하는 기업의 태도는 실로 걱정스럽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 제조업체 527개사의 지난해 말 유보율은 평균 635%로, 1년 전의 578%보다 57% 포인트나 높아졌다.
자본금 총액은 52조여 원으로 제자리 걸음을 했으나, 이익잉여금은 331조원으로 12%나 늘어난 덕분이다. 특히 10대 그룹의 경우 잉여금을 155조원이나 쌓아 유보율이 2005년 662%에서 지난해 753%로 급등했다.
문제는 유보율 확대가 신사업 진출과 사업구조 혁신 등 미래 수익원 확보를 위한 창의적ㆍ도전적 경영의 토대가 아니라 위험 회피 또는 방어적 경영의 결과로 읽힌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으나, 올 1분기에 4년래 최악의 실적을 거둔 삼성전자에 대해 "시장 변동성이 극심한 반도체 의존도가 너무 크고 미래를 보는 사업 포트폴리오가 취약하다"는 시장의 지적은 흘려 들을 수 없다.
GE가 오늘날 세계 최고 기업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배경에는 "10~20년 후 미래의 트렌드를 읽고 해당분야를 선점해 고수익 기반으로 삼는다"는 경영철학과 이를 실천에 옮기는 리더십이 있다. GE가 최근 대표적 사업군이었던 플라스틱 부문을 과감히 포기하고 재원을 에너지 환경 헬스쪽에 대거 투입하는 혁신을 단행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우리 기업들도 저마다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 찾기에 고심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과거 불모지에서 조선 자동차 반도체 정보통신 산업을 일궜던 기업가 정신은 찾기 힘든다. 현상유지 시도가 가장 위험한 일임을 항상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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