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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의 책, 산 그리고 자연이야기] <2>"병으로 퇴직 후에도 출판 생각 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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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의 책, 산 그리고 자연이야기] <2>"병으로 퇴직 후에도 출판 생각 간절"

입력
2007.04.1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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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는 출판과 언론이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많이 받던 시기였다. 헌법상으로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돼 있었으나 출판사 하나 차리려 해도 등록 접수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내고 싶으면 기존 출판사를 하나 사야 했는데 집 한 채 값이었다.

신구문화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열심히 일했으나 과로로 결핵에 걸리는 바람에 입사 10년 만인 76년 회사를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그 뒤 2년 정도 투병 끝에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자 친구 소개로 돈암동의 가구점 하나를 인수했다.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르던 때라 가구점은 성업이었고 매장도 3, 4개로 늘어나 생활은 안정됐다. 하지만 가구 판매에서 그리 큰 보람을 얻지는 못했다.

생산적인 사고와 활동을 하지 못해 답답했는데 그럴수록 출판에 대한 미련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나저제나 출판 등록이 풀리기를 기다리면서, 준비를 했다.

출판사를 차리면 종합출판사가 아니라 전문출판사로 운영키로 하고 국학, 민속, 예술, 자연, 전기문학 등의 자료를 수집했다. 그 가운데 특히 산악 서적을 많이 모았다.

그러던 차에 86년 서울 마포구 용강동 출판단지에서 각 분야의 산악도서 애호가들이 모여 최초의 산악 도서 전시회를 열었다. 나 역시 내가 갖고 있던 도서를 출품했다.

그 전시회에 참가한 33인이 그 해 12월 19일 한국산서회를 태동시켰다. 산악 저술가인 손경석씨가 회장을 맡았고 김영도 김성진 이용대 홍석하 조대행 고윤석 박그림 신승모 남선우 변기태 등 산악인과, 허창성 윤형두 이기웅 전병석 등 쟁쟁한 출판인들이 멤버로 참여했다. 출판사 편집자, 산악도서 마니아 등도 합류했다.

한국산서회는 매월 정기 모임을 통해 토론회를 열고 산악도서 전시회도 열었으며 현장 답사도 했다. 그 중 가장 관심을 모았던 행사는 87년 도봉산 만장봉 등반이었다.

한 팀은 한국 근대 등산이 시작될 무렵인 1930년대의 복장과 장비로, 다른 한 팀은 현대 장비와 복장으로 등반을 한 것이다. 초대 총무를 지낸 나는 지난해 12월 한국산서회 창립 20주년에 뒤늦게 회장이 됐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꽉 막혀있던 출판 등록이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88년 자유화됐다. 서울시청에 재빨리 달려가 2월 15일 등록을 마쳤다. 빼어난 글을 많이 소개하자는 취지에서 출판사 이름은 수문(秀文)으로 정했다.

출판사 등록은 했는데 어떤 분야의 책을 낼 지가 고민이었다. 문학 분야는 원래 경쟁이 치열하고, 예술에서는 열화당과 미진사가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민속 분야에서는 집문당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그때 최고의 북디자이너 정병규씨가, 내가 좋아하고 잘 아는 산과 자연환경 쪽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당시 출판계에서 혜성과 같은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나와는 한때 신구문화사에서 손발을 맞춘 특별한 사이였다.

우리는 우선 <세계산악명저선> 12권을 기획하기로 했다. 이 책을 산악인의 필독서로 한번 만들어 보자며 의기투합했다. 책은 정병규씨가 꾸몄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46판에 양장본, 표지도 황금색과 흙갈색의 중간색을 택했다. 표지와 커버도 단단하고 아름다웠다.

그 기획에 따라 하인리히 하러의 <티베트에서의 7년> , 안데를 헤크마이어의 <알프스의 3대 북벽> , 그리고 알프스 아이거북벽을 한국인 최초로 오른 정광식의 등반기 <영광의 북벽> 등 3권을 한꺼번에 발행했더니 산악계가 깜짝 놀랐다. <세계산악명저선> 은 산악계의 고전과 새롭고 재미있는 내용을 뽑아 지금도 산 책으로는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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