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18일의 총격사건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현지언론이 ‘학살(massacre)’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범행은 잔인했으며, 아무 죄 없는 어린 대학생들과 교수들이 희생되었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 그리고 충격에 휩싸인 한인 커뮤니티와 미국사회. 아무런 전조 없이 느닷없이 찾아온 이 엄청난 시련을 그들이 잘 견뎌낼 수 있기를 모두 간절히 바랄 것이다.
한편 이번 사건은 인종에 대한 언론보도의 행태와 미디어 재현의 문제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애초에 일부 언론에 의해 이 사건의 용의자가 ‘중국계’ 또는 ‘아시아계’ 남자로 알려지자 한국교민사회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인식하에 조금이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용의자가 ‘한국계’임이 밝혀지자 안도는 충격으로 바뀌었고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정신적 패닉상태에 빠진 유학생들과 교민들도 많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종이라는 ‘색안경’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사건이 보도되면서 아마도 교민들은 부지불식간에 1990년대 초반에 있었던 ‘LA인종폭동’을 떠올렸을 것이다. 로드니 킹이라는 한 흑인 남성운전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백인경찰들이 행한 집단구타로 인해 촉발된 그 사건은 미국사회의 주류인 백인계층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하지만 애꿎게도, 흑인커뮤니티에서 자리잡고 장사하던 한인들이 폭도화한 무리들의 약탈과 범죄행위의 표적이 되었으며 결국 한인사회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봤다.
사회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슈에 인종의 문제가 덧씌워질 때 예측하지 못한 불행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한인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후 흑인 풋볼스타인 오제이 심슨의 ‘백인 아내’ 살인사건재판 때에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볼 때, 미국과 서방의 주요 언론사들이 –게다가 한국의 언론들까지 덩달아- 이번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라고 헤드라인으로 크게 뽑아 보도하면서 이 비극적 사건의 본질보다는 국적이나 인종의 문제를 더 크게 부각시킨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만약 한 미국학생이 범행을 저질렀다면 ‘미국 국적의 백인이 범인’이라는 식으로는 절대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헤드라인에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려는 사실 규명의 차원보다는 백인주류사회가 소수민족이나 인종적 타자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이 짙게 배어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종이나 국적, 민족성(ethnicity)과 관련이 있는 민감한 뉴스를 다루는 보도 프로그램들은 사안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표현방법에 이르기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보도프로 못지않게 시사교양이나 연예오락프로 역시 한 사회의 ‘인종전경(ethnoscape)’을 그려내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국제결혼의 폭발적 증가에 따른 이혼율 상승과 여기서 파생된 여러 가정문제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 있는 와중에, 한편에서는 외국여성들을 ‘이국적 타자(exotic other)’로만 그려내는 <미녀들의 수다> 가 계속 방영되고 있고 또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가정 여성을 온정주의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 <러브 인 아시아> 같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다. 러브> 미녀들의>
이런 프로그램들은 뉴스 보도 못지않게 우리사회 ‘인종의 정치학(politics of race)’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인데, 성적 소수자를 주체적으로 드러내는 시도를 하는 대안미디어 -예를 들면 이주노동자 텔레비전 MWTV- 와는 접근방법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슴 아픈 이번 총격사건 관련보도를 반면교사로 삼아 단일민족의 신화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다인종, 다문화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한국사회의 주류 미디어가 인종문제에 관한 균형된 시각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재현의 관행을 확립해 나가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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