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만한 가슴을 위하여’ ‘파리 에펠탑에서 키스를’ ‘터키에서 하루밤을’ ‘SM5를 사자’ ‘집을 10만원권 수표로 도배하자’ ….
영화 제목이나 레스토랑 간판 같기도 하지만, 다름아닌 적금통장에 찍힌 통장이름들이다. 기업은행이 이달초 내놓은 ‘셀프 네이밍’ 적금으로, 고객들이 직접 자신의 통장 이름을 정할 수 있도록 한 상품이다. 고객들이 딱딱하거나 상투적인 통장이름 대신, 자신의 구체적인 목표를 담은 톡톡 튀는 이름을 정해 적금을 붓는 것이다.
금융 상품에도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 바람이 불고 있다. 고객이 직접 명칭이나 조건 등을 정할 수 있는 금융상품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고객 입장에서 상품 설계에 직접 참여, 자기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돼 만족도가 높아지고 회사측으로선 상품의 충성도가 높아져 일거양득인 셈이다.
기업은행이 판매한 셀프 네이밍 적금은 발매 2주만에 3,200계좌가 판매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이름을 통해 자기만의 통장을 갖게 되고 구체적인 목표 하에서 적금을 붓을 수 있어 저축도 더욱 열심히 할 수 있다”며 “고객이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상품을 적금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5월말까지 이 상품에 가입한 고객 중 톡톡 튀는 통장이름 총 1,010개를 선정해 해외여행상품권, 영화예매권 등의 경품을 줄 예정이다.
기업은행은 이와 함께 통장 계좌번호도 고객 자신이 정할 수 있는 ‘맞춤 계좌번호 서비스’도 2005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계좌번호 10자리를 고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데, 핸드폰 번호나 군번 등을 이용하면 계좌번호를 쉽게 외울 수 있다. 각 기관이나 기업체의 경우 해당 직종의 특징을 담은 계좌번호가 애용된다.
산부인과의 경우 3535(산모산모), 치과는 2828(이빨이빨), 재난구호단체는 9595(구호구호), 주유소는 5151(오일오일) 등의 숫자를 이용하는 식이다.
우리은행도 최근 고객이 직접 상품명을 정할 뿐 아니라, 약정기간과 납입주기, 납입금액을 정할 수 있는 ‘마이스타일 자유적금’을 내놓았다. 적금의 계약기간을 6개월 이상, 30년 이하에서 선택할 수 있고, 금리 변경주기도 6개월, 1년, 2년, 3년 중 고객이 선택해 결정할 수 있다.
만기를 장기로 설정해도 6개월~3년마다 적용금리를 변경할 수 있어 시장금리의 변동성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이다. 중도에 해지하더라도 금리 주기별로 약정금리가 지급돼 중도 해지 부담도 적은 것이 장점이다.
외환은행도 고객이 직접 상품내용을 설계하는 ‘UCC 트러스트(주식형 특정금전신탁)’을 내놓았다. 특정금전신탁은 은행이 주식이나 채권 등 운용 자산을 소개하고 고객이 이에 동의하는 형태가 일반적인데 이 상품은 고객이 직접 개별 주식을 선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하나은행의 ‘하나 셀프 디자인 예금’도 고객이 상품 조건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예금이다. 이 상품은 목돈을 맡긴 뒤 매월 원리금을 수령해가는 연금형 예금상품인데, 만기 잔액과 원리금 수령액을 중간중간 고객이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어 노후 생활비를 조절할 수 있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상품도 일률적인 기성복 시대에서 고객의 사이즈에 딱 맞는 맞춤 시대로 가고 있다”며 “이 같은 고객 맞춤형 상품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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