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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에베레스트/ 제3信-여기는 베이스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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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에베레스트/ 제3信-여기는 베이스캠프

입력
2007.04.18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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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정상'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향한 대장정이 시작됐다. 한국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기념, 박영석 원정대가 한국인 최초로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뚫는 것이다. 한국 산악사에 또 하나의 신기원을 세울 힘찬 도전에 본지 이성원 조영호 기자가 동행, 투혼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편집자

히말라야는 신이 허락해야 오를 수 있는 곳. 쿰부 빙하 위에 베이스캠프(5,360m)를 구축한 박영석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는 본격 등정에 앞선 13일 산행의 안녕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지냈다.

몸을 단정히 한 대원들은 1m 높이의 돌로 쌓은 제단 앞에 아침 일찍 모였다. 자일, 피켈, 눈 위에서 신는 삼중화, 아이젠, 박스텐트, 안전모 등 험한 산에서 몸을 지켜줄 등산장비들도 제단 앞을 지켰다.

히말라야 산바람에 향이 분분 날리는 가운데 라마제는 시종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제를 마치고 밀가루로 서로의 얼굴을 분칠해주며 무사안녕을 기원할 때 조차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대원들은 셰르파들이 건네 준 카다(행운을 빌어주는 노란 스카프)를 한명씩 돌아가며 제단의 깃대에 묶으면서 무언의 다짐을 건네는 듯 했다. “기필코 정상에 오르리라.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리라.”

박영석 원정대의 전체 원정기간은 60여일. 그 중 정상도전을 위해 허락된 기간은 불과 열흘에서 보름 안팎이다. 나머지 50여 일은 정상으로 가는 길을 닦고 캠프를 세우고 고소에 적응하며 토대를 닦는데 바쳐진다.

라마제를 지낸 다음날인 14일 새벽 5시. 베이스캠프의 텐트에 하나 둘 불이 밝혀졌다. 등반장비를 갖춘 대원들이 본부 텐트 앞에 속속 모여들었고 희뿌연 여명을 받으며 드디어 공격 캠프 구축을 위한 아이스폴 공격에 나섰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첫 관문인 아이스폴은 ‘악마의 늪지대’로 불리는 쿰부 빙하가 연출한 거대한 얼음계곡이다. 미끄러운 얼음벽은 발걸음을 하염없이 뒤로 잡아 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크레바스(얼음 사이의 틈) 위를 사다리에 의지해 건널 때면 생명을 건 모험에 다리는 물론 오장육부까지 후들후들 떨리는 것 같다. 진땀을 빼며 첫 관문을 통과한 대원들은 아이스폴 너머 해발 6,000m 지점에 공격캠프1(C1)을 구축했다.

오희준(37) 부대장과 이현조(35), 정찬일(27) 대원은 다음날 전진베이스캠프(Advanced Base CampㆍABC)인 C2를 세우기 위해 C1에 남았고, 나머지 대원들은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시작이 좋다.

대원들은 다음날인 15일 다시 15kg이 넘는 물자를 짊어 매고 C1으로 향했다. 박영석(43) 대장은 눈밭에서 신는 삼중화와 아이젠 없이 일반 등산화를 신고 스틱 하나에만 의지한 채 아이스폴 위로 C1까지 왕복하는,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묘기’를 보여주어 대원들의 찬탄을 끌어냈다. 긴장감으로 잔뜩 얼어붙은 대원들이 모처럼 크게 웃었다. C1에 남았던 대원들은 C2 구축도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이날 저녁 전 대원이 베이스캠프에 모여 첫 공격을 자축하는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원정대는 16일 하루 쉬고 17일부터 루트공략조, C1→C2 수송조, 베이스캠프→C1 수송조 등 3개 조로 나뉘어 원활한 공격캠프 구축에 나선다.

대원들은 ABC 구축과 C3 구축에 필요한 물자를 나르고, 고소에 적응하는 훈련을 위해 순차적으로 베이스캠프와 C1, C2를 오가게 된다. 박 대장은 “21일까지 남서벽 하단 해발 7,000m 지점에 C3 구축을 마무리한 다음, 수 차례의 정찰을 통해 공격 루트를 면밀히 검토한 후 기상 상황을 봐 가며 5월 15~20일께 정상 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네팔)= 글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사진 조영호기자 voldo@hk.co.kr

■ "해발 5360m서 맛본 국수 꿀맛"

12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귀한 손님을 맞았다.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과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 홍보대사인 2006 미스코리아 박희정, 김수현씨가 박영석 원정대가 있는 베이스캠프를 찾았다.

박 대장은 손님 접대를 위해 직접 솜씨를 발휘, 이국만리 산속에서 맛보기 힘든 ‘김치말이 국수’와 ‘떡볶이’를 만들어 점심 상을 차렸다. 박희정씨는 “고소 증세 때문에 부대꼈는데 뜻밖의 시원한 김치말이 국수 덕에 속이 확 뚫렸다”며 박 대장의 음식 솜씨를 치켜 세웠다.

김수현씨는 “12일에 걸친 트레킹이 쉽지 않았지만 베이스캠프에서 만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가슴 뿌듯하다”며 “원정대가 반드시 등정에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응원했다.

박 대장은 “베이스캠프까지 남자도 힘든 길을 이처럼 미녀 손님들이 찾아줘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박 대장의 음식 솜씨는 산악인들 사이에 정평이 나있다. 오랜 원정 생활을 통해 닦은 기량이다. 박 대장은 해가 진 후 무료하게 밤을 보내는 대원들을 위해 구운 야크치즈를 얹은 사과나, 참기름에 살짝 볶아낸 삶은 달걀 요리 등 맛있는 밤참을 선보이곤 한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네팔)=이성원기자

■ 남선우의 에베레스트를 말한다/ 든든한 협력자 셰르파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에베레스트 남쪽 기슭에서 만나는 가장 인상적인 추억거리는 고산족 셰르파들의 전통과 문화를 접하는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같은 몽골족 얼굴에 불교 신봉자이면서 전통적인 혈연사회를 이루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에 빠지게 된다.

아직도 셰르파를 히말라야의 짐꾼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20세기 중반까지는,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일궈 감자, 보리, 옥수수 등을 재배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산악 부족이었다. 그들은 500여년 전 동부 티베트의 ‘캄(Kham)’ 지방에서 지금의 거주지인 쿰부 지역으로 이주해 온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셰르파’는 그 부족의 성(姓)이다.

실제로 ‘셰르파(Sherpa)’라는 단어는 티베트어로 동쪽을 뜻하는 ‘샤르(Shar)’와 사람을 뜻하는 ‘파(Pa)’의 합성어로 ‘동쪽에서 온 사람’을 의미한다. 셰르파족은 동티베트를 떠나 16세기 초에 낭파(5,716m)라는 고개를 넘어 히말라야 남쪽 기슭에 정착했다. 그곳이 바로 셰르파의 고향이며 에베레스트의 관문인 남체바잘(3,440m)인 것이다. 이곳에서 셰르파족의 단일혈통 체계가 시작됐으며 오늘날까지도 1만 여 명이 전통을 이어가며 살고 있다.

셰르파들이 히말라야 등반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21년 영국의 1차 에베레스트 원정 때였다. 당시 인도 북동부의 다르질링 차 농장에 고용돼 있던 셰르파들이 그곳을 지나는 원정대의 짐을 나르게 되면서부터다. 셰르파들은 해발 3,000m 이상의 고도에서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유전적으로 환경에 순화돼 적응력이 뛰어났다. 처음에는 해발 5,000m 정도의 베이스캠프까지 짐을 날랐으나 차츰 더 높은 곳까지 올라 대원들을 도왔고 나중에는 본격적으로 등반에 기용됐다.

이제 셰르파들은 히말라야 등반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협력자가 됐다. 대원들 보다 훨씬 많은 짐을 질뿐만 아니라 산소가 희박한 정상까지 함께 가는 믿음직한 동반자가 돼 줬다. 이렇게 해서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히말라야 거봉 등정은 대부분 셰르파들과 함께 한 역사다. 1953년 에베레스트를 최초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 앞에는 텐징노르게이 셰르파가 있었고 1977년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태극기를 휘날린 고상돈 대원의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다름 아닌 펨바노르부 셰르파였다.

지금까지도 대다수 원정대가 수십 명의 셰르파를 고용해 짐을 나르게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다. 이처럼 셰르파들은 수많은 히말라야 등정에 참여했음에도 피고용인이란 신분 때문에 늘 영광의 뒷전에만 머물러 왔다.

그런데 80년대부터 셰르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대원의 힘으로만 오르는 소위 ‘셰르파리스(Sherpaless)’ 등반이 대두됐다. 보다 본질적인 등반을 추구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이 등반사조는 역설적으로 그전까지 히말라야에서 이룩된 위업의 절반이 사실은 셰르파의 몫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남선우 월간 마운틴 발행인[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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