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격 참사의 범인이 한국인으로 밝혀지면서 국내에도 엄청난 충격파가 번지고 있다. 여행업계는 미국 관광상품 예약자들이 현지 안전문제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고, 유학원은 미국 유학을 꺼리는 ‘풍조’의 확산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미국 유학과 어학연수를 준비 중인 학생과 학부모들은 현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일부 진로 수정을 고민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전국의 유학원에는 18일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지난해 청소년 30명을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보낸 한 업체에는 현지 상황과 귀국 여부를 묻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종일 이어졌다. 서울 강남의 한 유학원은 “최근 유학준비를 마친 학생과 가족들에게서 ‘정말 가도 되느냐’는 전화가 많이 온다”며 “학원가에서도 일시적이나마 유학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기 소지에 관한 질문도 폭증하고 있다. 서울 을지로의 한 유학원 관계자는 “유학 자체보다는 총기에 관한 질문이 더 많을 정도”라며 “앞으로 미국 유학 준비생에겐 총기 관련 오리엔테이션을 따로 할 작정”이라고 밝혔다.
비자 발급도 걱정거리다. 서울 종로의 N유학원은 “유학생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비자 발급”이라며 “미국 측의 비자 발급률이 그 동안 높아지는 추세였기 때문에 당장 영향은 없겠지만, 이민은 훨씬 엄격한 심사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행업계도 바짝 긴장했다. 미국 서부여행을 취급하는 부산 남천동의 한 여행사에는 예약을 취소한 손님이 없는지, 입국심사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닌지 등을 문의하는 고객들의 전화가 잇따랐다.
학생을 혼자 유학 보내려는 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오래 준비한 유학을 포기할 수도 없어 미국 이외의 영어권 국가를 알아보는 학부모가 부쩍 늘고 있다. 아들을 미국 고교에 보내려던 한 학부모는 “캐나다 등 총기 관련 사고 발생률이 낮은 국가로 입학시키겠다”며 계획을 수정했다.
한국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해 미국 문화에 익숙해지려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미국 퍼듀대 MBA(경영학 석사) 입학을 앞둔 김모(29)씨는 “어학 공부도 중요하지만 외국인과 잘 어울리기 위해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이나 미리 유학간 친구를 통해 밤에 시내를 다닐 때 주의할 점과 마약이나 총기 소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 학생도 늘었다.
기러기 아빠들은 잠을 못 이루고 있다. 교육 문제로 부인과 중ㆍ고생 두 딸을 미국에 보낸 제약회사 임원 강모(44)씨는 “가끔 거는 전화를 받지 않을 때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예 유학이나 연수를 포기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대학생 아들을 유학 보낸 정모(61)씨는 “이번 사고로 자식을 잃은 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을 어떻게 보겠냐”며 “가족들이 아들을 빨리 귀국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럴 때 일수록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서울대 초빙교수로 있는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은 이날 성균관대 특강에서 “이번 사건이 한미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2002년 장갑차 사고(효순ㆍ미선양 사고) 때도 한국 사람들이 왜 사고를 낸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미군 전체를 문제 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며 “미국 사람과 언론은 이번 사고를 어디까지나 개인 문제로 생각하지 한국인 전체와 연결짓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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