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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16> 백낙청 평론집‘민족문학과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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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16> 백낙청 평론집‘민족문학과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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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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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유의 정치적ㆍ역사적 사연이 있고 문단만 하더라도 서양문화사에는 없는 특이한 요소가 작용하고 (하략)”, “이번(한일국교 수립)에 확립된 한ㆍ미ㆍ일 체계가 우리 사회의 허다한 모순을 해결 못하고 널리 민족 감정의 지지를 얻지 못할 때(하략)”. 순수ㆍ참여 논쟁이 뜨겁던 1966년 <창작과 비평> 창간호 권두 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에서의 발언이다.

10여년 뒤, “평론가는 그 직접적 소재를 어디서 구하든 간에 결국 우리 문학과 역사의 ‘현단계’에 대해 발언해야 하고, 우리의 경우 그것은 ‘민족’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1978년 3월 간행된 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 문학> 1권의 머리말이었다.

지난해에는 제 4권을 발간, ‘통일 시대 한국 문학의 보람’이라는 부제 아래 한국은 이미 통일 시대로 들어섰음을 확인하고 통일 시대를 맞는 한국 문학의 모습을 두루 조망했다. 고은, 황석영, 신경숙, 배수아 등 주요 작가의 분석이 뒤를 이었다. 1집에서부터 견지해 온, 문학과 역사의 ‘현재성’과 ‘민족’이 그 황금률이었다. 1권이 6쇄, 85년 나온 2권은 8쇄, 90년 발행 3권은 2쇄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는 민족 문학이 우리 문학의 화두였어요. 나는 그걸 세계 문학과 함께 생각하자는 거 였죠.” 1월 검박하게 고희를 맞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 교수가 초심을 떠올렸다.

“나는 민족 문학을 중심에 세우고, 거기에 종속하는 담론을 펼쳤다“며 “이제 민족 문학은 자기 할 일은 했다는 판단”이라고 그는 말했다. 출판사측의 제안으로 ‘민족 문학과 세계 문학’이라는 책 제목을 부제로 돌리기도 했지만 관련 이론과 현장의 열기를 온존하려 애썼다.

소시민 혹은 시민이라는 고색창연한, 그러나 1969년만 해도 충분히 삐딱할 수 있었던 용어를 하나의 장르로 격상한 그의 ‘시민 문학론’(<창작과 비평> 1969년 여름호 수록)을 맨 앞에 수록함으로써 1권은 힘찬 고동을 울렸다.

“효도에 도무지 뜻이 없는 아들을 두신 어머님께 다소의 위로가 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머리말에 가름한 2권은 무크 운동 등 1980년대 민족문학론의 안팎을 살핀다. 강연록이 현장감을 더하는 가운데, 책은 민중 문학과 모더니즘 등 인접한 문학적 논의까지 포섭하고 있다. 미국의 의미를 궁구한 논문은 이 시대 각별히 다가온다. 3권에는 6ㆍ29의 울림이 살아 있다.

이 시대, ‘세계’라는 말은 기세등등하지만 ‘민족’이란 말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든다. 그러나 애초부터 두 가지가 공서(共嶼)해 온 일련의 저작에는 초발심이 온존해 있다. 최근 문단 일부가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민족이란 말을 빼자고 들고 나오는 등 민족이란 단어에 대한 심리적 길항이 노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는 “민족 문학이라는 문제 의식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단이 포용력을 갖자는 취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작가회의가 전선도 사실상 와해되고 회원수도 소수지만, 실제 활동으로 보면 최대의 단체라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주의를 요청했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내부의 다수결의를 거치면 빼도 좋겠지만, 내 평론집 부제에서까지 뺄 것 있느냐는 생각입니다.” 그는 “최근 일부에서 나오는 바, 그걸 ‘헛것’이라 치부하는 것은 인식 수준의 문제”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민족 문학이 구호처럼 돼, 그를 중심으로 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그러나 그 문제 의식, 즉 문학과 현실의 관련성, 한국 문학과 분단 체제의 극복이라는 역사적 과제와의 연관성 등을 강조하는 문학 담론은 살아 있습니다.”

한국 문단의 역동성은 기대의 가장 큰 근거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현실과 인생이란 문제를 두고 볼 때 경청할 만한 작가가 고갈됐으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는 “<만인보>로 외국서 호평 받고 있는 고은 시인의 경우, 작년에 새 시집까지 냈다”며 “황석영 씨도 <심청> <바리데기> 등 주목을 요하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현역인 선배, 김연수 박민규 김애란 이기호 등 신진 작가군을 주목 그룹으로 언급하면서 그는 엷은 중간대 작가군을 우려했다. “공선옥 심경숙 은희경 정도를 언급할 수 있겠죠.”

그는 세대별 작가군을 거론하는 것 보다는 같은 세대 작가들의 우열을 가려 주는 게 비평가의 임무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박민규나 황병승이 인기 끌 때는 유사작, 아류의 우려도 많았죠. 비평이 동시대인의 정서에 도움되려면 그들의 훌륭한 점, 부족한 점을 정확히 지적해 줘야 해요.” 비슷한 세대 가운데 옥석을 가려줘야 한다는 말이다. 당대에 철저히 관여하고 복무해야 한다는 비평가적 강단이다.

“본격 연구자라기보다 비평가로서 문학 해 왔다”는 자평은 씌어진 작품이 아니라, 지금 이 곳에서 씌어 지고 있는 거대한 텍스트, 즉 현실을 비평해 온 그의 입지를 압축하고 있다. 그는 일련의 저작이 “ ‘한반도 분단 체제 극복이 가장 큰 과제’라는 지론이 낳은 산물”이라고 말했다.

“외국으로 대학 간 것이 내 인생을 결정한 중요 계기였죠.” 모든 것이 거덜난 휴전 직후라 그를 포함, 명민한 인재들은 외국 행을 많이 들 택했다. “4ㆍ19 발발 전에 한국 행을 결정했던 나는 그 후 4ㆍ19 소식을 들었어요.

결정하길 잘 했다, 흥분까지 되더군요.” 당시 미국 하버드 대학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석사 1년 과정에 있던 그는 군필 없이 유학 갈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였다. 해외 유학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돌아오지 않고 군대에 빠지던 때였다. 그러나 그는 군대 가는 것으로 미국 교수 길을 거부. 분단 현실을 피부로 느꼈다.

다자 회담이라는 현실의 틀 속에서 지금 한국에 주어진 통로를 묻는다. “남북 통합 추진, 남북 화해 협력 등 점진적 통합 과정에서 힘을 받아 남북 사회의 개선을 기할 때입니다.

분단 체제 극복이란 말이 이제는 ‘실감 나게’ 다가 왔어요.” 그간 장애물이었다면 북미 대립에 의한 고도의 긴장 상태였지만 2ㆍ13 합의로 최대의 난관은 건넌 셈이니, 이제 진짜 우리 하기 달렸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도 어울린다 싶으면 (‘민족 문학과 세계 문학’이라는 틀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며 당초의 문제 의식이 여전히 유효함을 내비쳤다.

서양의 소설과 시에 대한 생각도 정리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쩌면 그보다 앞서, 기자들과 나눈 숱한 대담을 종합한 책이 뒤늦은 고희 기념 선물로 당도할지도 모른다. 1970년대 이후, 그는 이래 저래 언론이 즐겨 찾는 인터뷰 대상자 아니었던가.

■ 현재 맡고 있는 직함들 "공익근무 하는 셈" 설명

"공익 근무 많이 하죠." 웃음이 말끝에 묻어 나온다. "민주 사회 시민은 어느 정도 '공익 근무'를 해야 해요. 우리 시대 문학 연구가 중요하긴 하지만, (현장 비평에) 끌려 다니다 이도 저도 못하는 게 가장 두려워요. 나도 그런 문제점 없진 않지만 평론가 - 문학도로서의 본령을 지키려 하죠." 현실적으로 그 분량은 엄청나다.

"비정규직이 셋이에요." 서울대 영문과 명예 교수 외에도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인, '시민 방송' 이사장, 2005년 1월 이래 맡게 된 6ㆍ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 대표 등 이름 뒤에 붙는 직함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9월 '시민 방송' 이사장(6년제)의 임기가 끝나지만, 여전히 바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동아시아적 전통이기도 하지만, 공익 업무와 문학적 책임은 대립하지 않아요. 현실적으로 처리ㆍ감당하는 문제량이 많아 힘들지만, 아직 포기 않고 있어요." 나름의 원칙이라면 아무리 공익성 있어도 '비정규직' 아니면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독서에 투여할 시간이 부족해 생기는 불만은 어쩔 수 없다. 그 와중에 내놓은 저작들 중 스스로 꼽는 대표작은 <민족 문학과 세계 문학> 2권이다.

"서두르지 말라는 주장을 해 왔다. 일단 성적표가 좋다고 정부에서는 말 하는데, 이제 내용을 까놓고 제대로 된 검토를 해야 한다. '실제적 문구'가 중요한 협정에서 대략적 내용이란 무의미하다.

국회ㆍ국민에게 밝힐 만큼 밝힌 뒤, '우린 잘 했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자들을 이념적 교조주의로 몰아치는 것은 결국 권위적 정부라고 스스로 폭로하는 셈이다." 국가적 초미의 관심사, FTA를 지켜보는 그의 소회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나름대로 활동한 자로서, FTA에 관한 정부의 비민주적 행태는 지적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 백낙청 프로필

1938년 대구 출생

1955년 경기고 졸업 후 미국 브라운대 입학

1966년 <창작과 비평> 창간

1972년 하버드대 박사. 서울대 영문과 조교수

1974년 민주화 회복 국민 선언 서명으로 파면

1976년 창작과비평사 대표

1996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2004년 서울대 명예 교수

2005년 6ㆍ15 공동 행사차 북한 방문

2006년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 출간. 제 11회 늦봄 통일상 수상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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