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도 경매회사가 자리를 잡으면서 미술품 가격이 화제가 되곤 한다. 지난달 박수근의 유화 '시장의 여인들'은 25억원에 낙찰되어,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유럽에서 경매가 일찍 정착한 것은 '3D'라고 불리는 인간 불행의 탓이 크다. 병(Disease)과 이혼(Divorce), 죽음(Death) 등을 맞게 되면 물건들을 경매시장에 내놓음으로써, 재산을 공정하게 처분했던 것이다.
소더비와 크리스티라는 두 개의 세계적 경매회사를 탄생시켜, 귀중한 물건들을 나눠 갖게 하는 영국인의 실용주의와 합리성은 감탄스럽기도 하다.
▦ 일본에는 '유품 나누기'라는 풍습이 있다. 망자의 옷이나 물건들을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나눠 주어, 고인에 대한 고마움과 추억을 간직하게 하는 풍습이다. 수집광이자 수필가인 세노 갓파는 아예 살아 있는 사람의 유품 나누기를 하고 있다. 놀러 온 친한 사람들이 갓파의 물건에 이름을 써 놓으면, 갓파가 죽은 후 그 사람의 소유가 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탐나는 물건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씌어 있어도 개의치 않고, 자기 이름을 나란히 적어놓기도 한다. "앞에 등록한 사람이 먼저 죽을지도 모르니까" 하면서.
▦ 10년 전 외환위기와 불황이 닥쳤을 때, 우리 사회에도 유행처럼 물건 나눠 쓰고 아껴 쓰기 바람이 일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아름다운 가게'도 등장하여 지금까지 안 쓰는 물건 나눠 쓰기 운동을 이끌고 있다. 미술품 경매나 '아름다운 가게' 운동 등이 귀중한 물건의 가치와 생명을 연장하고, 나눔 문화를 대중화하는 선도 역할을 하고 있다.
▦ 나눔과 관련하여 사적인 얘기를 덧붙이자면, 2년 전 봄 한 친구로부터 자스민 꽃을 선사 받았다. 더없이 향기로운 선물이었다. 자스민은 희고 가녀린 꽃에서 인간이 범접하기 어려운 높은 품격의 향기를 집안 가득히 뿌려 주었다. 2년이 지나니 자스민이 두 배로 불어났다.
개화를 앞 둔 한 달 전쯤, 자스민 포기를 둘로 나눠 그 중 하나를 마치 원금을 갚듯이 친구에게 돌려 주었다. 우리 집이 향기로 그윽해질 무렵, 그에게서도 '자스민이 꽃 문을 열었다'는 이메일이 왔다. 주고 받는 꽃은 시들지만, 꽃나무는 시들지 않는다. 지인과 꽃나무를 나눠 갖는 계절이야말로 봄인 것 같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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