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매킨지사의 입사시험문제가 미 포브스지에 소개된 적 있다. 시카고의 이발사는 몇 명일까, 어떤 지역의 특정한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몇 대나 설치하는 게 좋은 것인가, 대충 이런 문제였다.
똑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 시카고 인구가 몇 명인지, 성인 남자는 얼마인지, 남자 한 명당 얼마에 한번 이발을 하는지 등등 객관적인 정보와 상식, 기본적인 수학지식을 바탕으로 판단능력 자체를 보려는 문제였다. 물론 이 문제가 말하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 풀지 못할 문제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익힌 사람이 풀 수 있는 문제였다.
● 사람 고를 줄 모르는 사회
반면 최근 몇 년간 소위 명문대라는 대학들이 쏟아낸 논술시험문제를 보면 고등학교에서 익힌 지식과 판단력으로는 도저히 풀기 어려운 난제들로 가득했다. 족집게 논술 과외로 생각을 몇 바퀴씩 돌리는 훈련이 된 학생에게나 겨우 보일 법한 문제들이었다. 대학교수들조차 논술이 어렵다고 인정했다.
이런 대학들이 본고사를 따로 보게 해주면 우수한 학생을 뽑을 수 있다고 한다. 논술은 사실상 학교별 본고사이다. 그걸 살리지 못한 대학이 과연 무슨 근거로 본고사 문제는 제대로 내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최근의 3불 반대논의를 보고 있으면, 과연 3불에 대해서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3불은 본고사, 고교별 등급제, 기여입학제 세 가지를 금지하는 정부의 교육원칙을 말한다.
3불이 깨져야 공교육의 수준이 올라가고 가난한 영재도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참 엉뚱하다. 공교육의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3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우선 기여입학제부터 보자. 한국의 대기업들이 스스로 창의적인 입사시험문제를 낼 줄 알면 기여입학제를 허용할 수 있다. 헌데 그렇지 않다. 서류면접에서 토플 점수와 출신 대학, 성적순으로 거르는 회사들이 너무 많다. 아무리 대학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도 출신 대학 이름값이 낮으면 시험장까지 가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인데 기여입학을 허용하면 돈으로 대학 들어간 사람이 취업에서도 앞자리를 차지한다. 매킨지사에는 학교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의 사고력이 중요하다. 이러니까 미국은 기여입학제에 너그러울 수가 있다. 현재의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고교별 등급제라는 것이 특수목적고 학생들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억울하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입학할 때부터 그들은 그 점을 알고도 선택했다. 대신 우수한 동료들과 효율적인 수업시간을 얻었다.
더구나 특목고 특성에 맞춰서 학교를 가면 불리하지 않다. 그런데 대학에 갈 때가 되어서는 약속을 내팽개치고 무조건 자기 편의대로 해달라고 고교별 등급제가 있어야 한다니 이건 떼법 아닌가.
● 외국어 특목고 자체가 시대착오
본고사를 살려야 한다는 논의가 나온 배경은 이해가 간다. 나 역시 25년간 젊은 세대들을 일터에서 지켜보면서 본고사 세대들이 다른 것을 실감했다. 사고하는 법이 더 정교하고 일하는 방식이 주도적이다. 대학교수들도 이 점 때문에 본고사를 부활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고사 세대의 장점은 학교별 고사에서가 아니라 주관식 시험에서 나온 것이다. 수능시험이 객관식이 되면서 고등학교의 시험도 객관식을 따르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보다는 정답을 맞히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배운 내용을 되새김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심각한 문제이다.
공교육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모두의 몫이지만 3불 비난은 틀린 과녁이다. 그보다는 외국어 특기생을 기른다는,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외국어 특목고를 없애고, 지역별 최우수 공립고를 한 두 개씩 만들라거나 수능시험문제를 주관식으로 내라고 주장하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다.
서화숙 논설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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