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이’ 이적이 변했다. 시원하게 뽑아내는 듯한 창법으로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대들던 독기는 온데 간데 없다. 둔탁한 비트와 현란한 전자음으로 사회의 구린 부분을 흔들어대던 배포 역시 사라졌다.
이적의 3집 앨범 <나무로 만든 노래> 를 처음 들으면 귀를 의심하게 된다. 앨범 전체가 어쿠스틱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가사마다 사랑에 빠진 남자의 절절함이 묻어난다. “소극장에서 관객들을 바라보고 연주하는 듯한 노래들로 채웠어요. 속삭이듯 진심을 이야기해요. 그래서인지 예전 앨범에 비해 제 자신이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노래와 연주인 것 같아요.” 나무로>
이적의 이전 음악에서도 어쿠스틱한 흔적은 찾아볼 수 있다. 기타와 피아노를 기본으로 절제된 반주와 가사로 팬들의 감성을 건드린 곡들이었다. 패닉 시절 <기다리다> <강> <미안해> <눈 녹듯> 같은 곡들은, 그래서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런 흐름은 솔로 앨범 속의 <서쪽 숲> 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3집은 이렇게 한 곡씩 숨어있던 보석들을 한데 모아놓은 ‘보석상자’와도 같은 느낌이다. 사회에 대한 저항 혹은 반항을 과감하게 들어내고, 그 자리에 사랑의 따스한 감성을 오롯이 담아냈다. 서쪽> 눈> 미안해> 강> 기다리다>
이적은 이번 앨범의 작사와 작곡 그리고 연주까지 혼자 해내며 자기 이야기에 진정성을 담아내려 공을 들였다. “일상적인 이야기나 요즘 하는 생각을 노래로 표현해 봤어요. ‘너의 음악적 전성기는 90년대였다’고 타박하던 동료들이 제가 활동한 12년 동안에 나온 앨범 중에 제일 좋다고 칭찬을 해줬어요.”
이중 타이틀곡 <다행이다> 는 ‘남자’ 이적에 방점을 찍은 곡이다. 뉴욕에서 유학 중인 여자친구를 떠올리며 단 하루 만에 만들었다. 애초에는 1분이 조금 넘는 피아노 반주만 들어간 소품이었는데 모니터링을 하던 가수 김동률이 “이거 괜찮다”며 추천하는 바람에 후렴구를 더하고 드럼과 베이스 연주를 추가했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라는 서정적인 가사가 사랑에 깊이 젖은 이적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야릇한 감정을 선사한다. 다행이다>
이에 반해 이적이 ‘노래를 노래하는 노래’라고 말한 <노래> 와 공연을 마치고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읊조리는 듯 부르는 <무대> 는 ‘뮤지션’ 이적에 대한 곡이다. 이적은 이번 앨범을 ‘새로운 모색’으로 규정했다. 패닉으로 시작해 카니발, 긱스를 거치며 음악적 실험을 거듭하다 이제야 홀로 남은 30대 뮤지션의 진심을 담은 일성(一聲). “그 먼 길을 돌아와서 어디에 내놓아도 ‘이것이 이적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진정한 내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번 앨범을 그 시작으로 보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무대> 노래>
김성한 기자 wi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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