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생기는 것은 야망을 품을 때다. 당신은 태양까지 날아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다르다넬스 해협으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뜬 자들의 도시> 에서) 눈뜬>
우리에겐 <달세계 여행> 으로 특수효과의 아버지로 알려진 멜리에스지만, 그의 작품 중에는 <해나라 여행> 이란 귀여운 무성영화도 있다. 기차모양의 우주선이 하늘을 날아 올라, 눈 내리는 우주를 넘어 이글거리는 햇님의 입속에 쏙 박혀 버린다. 그 순간 해는 눈을 찔끔 감으며, 이 맛대가리 없는 우주선을 꿀꺽 삼킨다. 해나라> 달세계>
늘 태양의 신 아폴로 다음에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인 것 같지만, 적어도 SF영화사에 있어서 만큼은 달은 해를 압도했다. 토끼가 사는 달, 치즈로 만든 달. 사람들은 달을 보며 그곳에서 유영하는 달콤한 상상을 즐기지만, 해를 쳐다보면서는 그 언저리에만 가도 육신과 영혼 모두가 활활 재로 변할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감, 아니 그것을 넘어선 압도적인 경외감에 사로잡힌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카루스는 새들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그것을 붙였다가, 그만 다르다넬스 해협으로 곤두박질 쳤을 것인가.
<선샤인> 은 이런 생각을 뒤집는 영화다. 해에 갈 수 있다는 상상력, 가보고 싶다는 통제불가능한 욕망. 영화의 압도적인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거대한 용광로인 '태양'의 금빛이며, 감독 대니 보일은 지구를 이루는 '흙 물 불 공기' 이 4원소를 모티프로 자신만의 묵시론을 펼쳐든다. 끊임없이 빛(불)을 향해 달려가면서 공기부족으로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 대원들이 본 것은 한줌의 흙으로 변한, 자신들의 미래일지도 모르는 다른 우주선의 운명이었다. 선샤인>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흥미로운 공식을 유추할 수 있다. <아폴로 13> 이나 <스페이스 카우보이> 같은 달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늘 어떤 위기에서도 지구로 귀환하는 인간의 귀소 본능과 문제해결력을 예찬한다. 달에 가는 것은 나이도 문제가 아니며,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태양’에 이르르면 이러한 우주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이 정반대로 선회한다. 비록 CG였겠지만, 우주복에 난 조그만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점 샷, 그곳에 위치한 태양은 인간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절대적인 파워,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무한대의 금빛 구멍, 골든 홀이었다. 스페이스> 아폴로>
그런데 아쉽게도 <선샤인> 은 막대한 제작비를 들였지만, 자학과 비틀린 희귀한 농담으로 대처리즘 시대를 강렬히 비판했던 <트레인스포팅> 의 패기와 역동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사이즈 콤플렉스, 전 세계가 할리우드에 갖고 있는 강박적인 열등감을 다시 한번 드러낸다. 그러한 면에서 대니 보일이야말로 너무 태양에 접근하려다 날개가 녹아 추락한 SF계의 '이카로스'는 아닌가? 사라마구의 말대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역시, 야망을 품을 때다. 트레인스포팅> 선샤인>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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