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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허동구' 주연 정진영/ "아버지를 연기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 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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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허동구' 주연 정진영/ "아버지를 연기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 살았죠"

입력
2007.04.1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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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다. 날 때부터 곱슬이었다는 머리칼과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왕의 남자> 의 ‘1,000만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이자 정진영(43)은 손사래를 친다. 그가 <날아라 허동구> (감독 박규태)로 2년 만에 관객 앞에 다시 선다. 긴장이 될 법한데도 싱글벙글이다. “개봉이 늦어져 많이 걱정했어요. 배우보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찍은 영화예요.”

정진영은 IQ60에 머문 아들 허동구(최우혁)의 초등학교 졸업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바치는 아버지 허진규를 연기했다. 치킨집 사장인 그의 인생목표는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참 소박한 꿈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지상 최대의 과제다. 발달장애 아들을 돌보는 연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진영은 “편하디 편한 연기였다”고 말한다. 동구를 통해 현실 속 열 살짜리 자기 아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리라. “촬영 내내 ‘연기’가 아니라 ‘생활’을 했죠. 동구는 그냥 제 아들이었어요. 같이 밥 먹고, 목욕하고, 잠자는 게 일이었어요. 제가 출연한 영화 중 영화관에서 아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첫 작품이에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공입니다.”

<날아라 허동구> 의 개봉(26일)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홍보에 열심이다.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에 카메오로 나섰고, 아침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TV 출연을 자제하던 이전과 사뭇 다르다. “착한 영화죠. 상업성, 오락성은 부족할지 몰라도 누구 하나 손가락질하지 않을 영화라고 자신합니다. 음…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사람들이 안 봐주면 억울하겠더라고요.”

정진영의 말대로 <날아라 허동구> 는 착한 영화다. <왕의 남자> 처럼 사랑에 목마르지 않고, <황산벌> 처럼 정복을 꿈꾸지도 않는다. <달마야 놀자> 의 폭력과 욕설은 다른 세상 얘기다. “시사회 때 아내, 아들과 나란히 앉아 영화를 봤어요. 셋이 모두 울었죠. 대단히 슬퍼서 가 아니에요. 다들 내 얘기 같아 뭉클해진 거죠. 연기가 자연스러울 수밖에요. 오히려 연기를 안 하려 했죠. 영화 개봉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거 야단났네요.”

1988년 연극무대를 통해 데뷔, 올해로 꼬박 20년째 ‘연기밥’을 먹고 있는 정진영. 이쯤 되면 배역을 주는 입장에도 서 보고 싶을 법도 한데 정진영은 “어이구”라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배우가 연기를 못하면 자기 혼자만 굶으면 되지만 영화감독이 제 몫을 못하면 식구들 다 굶기고 남의 돈 홀랑 까먹죠. 그거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 해야 해요. 난 아니에요. 배우는 선택을 받는 사람이에요. 이번에는 정말 하고 싶었던 아버지 역으로 선택 받았죠. 그게 재미예요. 연기로 족해요.”

안진용 기자 realyong@hk.co.kr

■ 영화 '날아라 허동구' "아들아, 초등학교만 졸업해다오"

번트.

이 하나를 위해 90분을 기다려야 한다. 치킨집을 하는 아빠 허진규, 진북초등학교 야구코치 권상길(권오중)은 물론 관객들까지. 물론 그 번트는 극적이다. 1점 차로 뒤진 마지막 6회말 투아웃 만루. 배트 휘두르는 것은 고사하고 무서워 눈도 뜨지 못하던 IQ 60의 허동구가 투 스트라이크 후, 날아오는 볼에 배트를 갖다 댄다. 처음 공을 맞추는 순간이자, 팀의 역전승 순간이고, 동구가 이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순간이다.

<날아라 허동구> 는 <아이 앰 샘> <말아톤> <허브> 와 형제다. 열 한 살짜리 발달장애아와 아빠의 이야기. 아내가 죽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빠는 학교에서 주전자를 껴안고 물당번만 하는 아들 동구만을 위해 산다. 길을 잃지 않게 하려고 이사도 않고, 다니던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 시키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야구부에 넣는다.

영화가 가야 할 길은 결말만큼이나 뻔하다. 학교생활과 야구에서 동구가 빚어내는 웃음과 실수, 그 크기만큼이나 아픈 아빠의 마음을 반복한다. 마지막 단 한번의 기쁨과 감격을 기다리며. 그 기다림을 지루하지 않게, 오히려 가슴 뭉클하게 해주는 것은 부자(父子)의 사랑이 아니라, 아이들의 우정(友情)이다. 혼자서 운동장을 두 바퀴 돌아 선생님이 꾸중하자 “한 바퀴는 짝(심장이 아파 달리기를 못하는 준태) 주려고요”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동구. 그 일로 마음을 열어 야구규칙을 가르쳐주고,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동구에게 주전자를 들고 다가가 물을 따라주는 준태.

이렇게 처음 예상과 빗나가 아빠의 사랑이 두드러지지 않으면 어떤가. 이게 이 소박한 영화의 힘인데.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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