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소련으로 압송, 강제노동에 동원된 국군포로들은 외부와 완전 고립된 채 원시적인 생활환경과 중노동으로 인해 수감된 지 몇 개월 이내에 수백명 씩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미주한국일보 뉴욕지사가 입수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1952년 9월2일자 ‘한국전쟁 포로들을 위한 특정 위치의 소련 통행 수용소들’ 첩보 보고서는 1951년 7월~52년 4월 소련 곳곳의 수용소에 보내진 국군포로들의 압송경로, 수용위치와 규모, 수용소의 혹독한 생활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1951년 7월을 시작으로 여러 배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북타(Bukhta), 마가단(Magadan) 항구를 통과했는데, 이들 배에는 매번 1,000명 이상의 국군포로들이 실려 있었다”며 “항구에 도착한 포로들은 기차, 트럭, 배로 발카렘, 우스트 마이스크(Ust MaiK), 야쿠츠크 등으로 옮겨졌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어 “발카렘으로 보내진 포로들은 동시베리아해의 니즈니 콜리마스크(Nizhni Kolymask) 지역의 수용소들로 보내져 도로공사, 전력소, 비행장 건설에 동원됐다”며 “그들의 숫자는 매우 높은 사망률과 추코츠키 반도(Chukotski Peninsula) 지역의 다른 수용소들로의 이동으로 인해 제각기 달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이들 수용소는 소련 내무부가 관리해 완전히 고립돼 있으며 1952년 4월 현재 ‘니즈노 콜리마스크’(Nizhno Kolymask) 수용소들에는 국군포로가 약 1만2,000명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우스트 마이스크와 야쿠츠크 사이에 위치한 국군포로 전용 수용소들은 50~200m 간격으로 500~1,000명이 각각 수용돼 있고 탄광, 토목, 댐 공사 노동을 하고 있다”고 밝힌 뒤 “포로들은 매우 힘겨운 육체적 노동을 하고 원시적 이하의 생활환경에서 살고 있어 ‘암가(AMGA)'라 한 수용소에서는 1952년 2월~4월 약 300명이 죽었다”고 밝혔다.
이는 1951년 7월부터 국군포로들이 야쿠츠크 수용소로 보내지기 시작된 점을 감안 할 때 한 수용소에서만 불과 8~10개월 새 수백명이 죽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소련으로 압송된 국군포로들이 지금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CIA 첩보 보고서는 소련 내무부 요원 2명과 ‘시베리아황단철도(TSR)’ 직원에게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1953년 5월 이 문제를 심층 보도한 미국 자이그먼트 나고스키 기자가 폭로한 ‘국군포로의 소련 압송 경로와 현지 생활상’과 내용이 거의 일치해 미 국방부 포로실종자지원국이 2005년 초 작성한 미군포로 실종 진상파악 보고서에서도 증빙 자료로 인용됐다.
미주한국일보 뉴욕지사=신용일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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