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시에서 세무상담소를 운영하는 세무사 보타이어는 오전 7시 사무실 앞에 길게 줄을 선 수백명의 외국인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금 정산 등 세무상담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선 이 사람들은 350여명으로 모두 납세의 의무가 없는 불법 이민자들이었다. 4월15일까지인 소득세 보고 기한이 다가오자 자진해서 세금 정산을 하러 온 이들 중에는 6년치 체납세금 1만4,000달러(약 1,300만원)를 현금으로 가방에 담아 직접 들고 온 멕시코인도 있었다.
그는 “일하고 있으니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소득세 납부가 언젠가 시민권을 받게 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장기 불법체류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민법 개정안이 의회에서 논의 중인 가운데, 시민권 획득에 대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납부하려는 불법 이민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6일 보도했다.
미국의 불법 이민자들은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사회보장번호(PIN)는 받을 수 없지만, 국세청은 그들이 세금신고를 할 수 있도록 개인납세번호(ITINㆍIndividual Tax Identification Number)를 할당한다.
ITIN은 외국인 투자자 등 미국에서 소득이 발생한 비시민권자들의 세금 신고를 장려하기 위해 1996년 도입된 제도로, 현재까지 발행된 ITIN 중 1,100만개가 불법 이민자들에게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아주 제한된 경우를 제외하고 국토안보부 등 다른 정부기관에 납세자의 정보를 누설하지 못하게 돼 있다.
2005년 ITIN을 이용한 세금 납부자는 전년보다 30% 증가한 19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낸시 마티스 국세청 대변인은 “왜 갑자기 납세자가 증가했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지역사회의 효과적인 계도ㆍ봉사활동과 납세를 시민권과 연계시킨 이민법 개정안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민법을 엄격히 집행하라고 요구하는 측에서는 불법이민자들의 ITIN 사용이 불법적인 존재를 합법화한다고 비난해왔다. 그러나 마크 에버슨 국세청장은 최근 “국세청은 세금 징수기관이지 이민법 집행기관이 아니다”며 “우리는 당신이 여기 합법적으로 있든 아니든, 합법적으로 벌었든 아니든 당신의 돈을 원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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