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남북장관급회담에서 18일부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열어 쌀 지원 문제를 최종 결정하기로 한 합의를 깨고 경추위를 연기하거나 경추위에서 쌀 지원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당분간 남북관계 경색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장관급회담에서 쌀 40만톤 지원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후 이번 경추위에서 쌀 차관 계약체결 문제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었다. 당시 정부가 3월 경취위를 열자는 북측의 제의를 한사코 거부하고 2ㆍ13합의 초기조치 시한(14일) 이후에 열기로 고집한 것은 북한의 2ㆍ13합의 이행과 쌀 지원을 연동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경추위에서는 이와 함께 경의선ㆍ동해선 열차 시험운행 및 이와 연동된 경공업 원자재 제공 등이 주로 논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가장 기대하고 있던 쌀 지원을 남측이 유보할 경우 북측이 열차 시험운행에 동의해 줄 가능성이 낮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 경우 남북이 장관급회담에서 합의한 상반기 중 열차 시험운행은 사실상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또 경추위가 파행으로 끝날 경우 5월 초로 예정된 이산가족 대면상봉행사 역시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7월 장관급회담에서 우리측이 쌀 차관과 경공업 원자재를 달라는 북측 요구에 응하지 않자 이산가족 상봉을 전면 중단하고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공사 인력도 쫓아냈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쌀 차관 지원에 합의하면서 그 전제 조건으로 북한의 초기조치 이행을 연계하는 방안도 제기하고 있다. 경추위에서 쌀 지원에 합의하되 북한이 초기조치 이행과 관련한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실제 지원이 시작되는 조건을 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북핵 문제와 쌀 제공이 상호 연관성이 있지만 기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북한이 초기조치 이행 의지를 내비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쌀 지원에 합의해줄 경우 국내 비판 여론이 비등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 비료지원 등 인도적 지원도 중단될 수 있다. 정부 소식통은 이와 관련, “북한이 2ㆍ13합의 이행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갈 경우 지난해 7월 미사일 발사 이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면적인 대북지원 중단도 검토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북측이 경추위 개최 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초청하거나, 늦어도 경추위가 끝나는 21일 전까지 초기조치 이행에 대한 의지를 보일 경우 상황이 풀릴 수도 있다. 신언상 통일부 차관이 이날 한 학술회의 기조발언에서 “북한은 지금이라도 국제사회의 노력과 충고에 호응해 초기조치를 지체 없이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상황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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