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휴일의 고즈넉함에 취해 있던 대전 서구 삼천동 수정아파트 사거리 한 켠에 한나라당 이재선 후보의 유세 차량이 들어섰다. 국회 의원 여럿이 모여들었고, 이날 인도에서 귀국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까지 왔다.
이 전 시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아파트 베란다마다 유력 대선주자를 보려는 호기심 어린 얼굴들이 나타났다. “정권교체를 하고 싶으면 이 후보를 반드시 찍어 주십시오.” 박수가 쏟아지고 ‘이명박 이명박’하는 연호도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 대통령 뽑냐”는 빈정거림도 박수 속엔 섞여 있었다.
3선 도지사 출신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는 이 시각 둔산동 갤러리아백화점 일대를 누비고 있었다. 심 후보가 나눠 주는 명함은‘자존심을 찾자’고 호소하고 있었다. 뜻을 묻자 심 후보 운동원은 “이번 선거가 충청의 마지막 자존심인 심 후보와 한나라당 간의 싸움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서구을은 대전의 강남이다. 정부대전청사와 시청이 있고, 고층 아파트가 잘 닦인 도로 변에 도열해 있다. 중산층, 특히 엘리트 공무원이 많이 산다.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강세지역인데 이번 선거만큼은 인물과 정당이 맞부딪혀 혼전 양상이다. 부동산업자 정재록씨는 “인물 면에서 심 후보가 훨씬 낫지유. 그러니 자존심 센 이 동네 사람들이 당 하고 인물 놓고 고민하는 거유”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둔산동에서 만난 최모(53)씨는 “심 후보가 김종필 이인제 이후로 충청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바람에 날려 버릴 수는 없지 않냐는 얘기가 많다”며 “지난해 지방선거 때 염홍철씨를 떨어뜨린 걸 후회하는 대전 시민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으로선 조금 당혹스럽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지만 이재선 후보가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판세를 잡기 위해 열린우리당 후보가 심 후보를 밀어주기 위해 사퇴한 것을 집요하게 파고 들고 있다.
이 후보측은 “심 후보가 열린중심당 후보라는 식의 공격이 서서히 먹히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경점을 경영하는 장모(38)씨는 “국민중심당은 조금 있으면 우리당에 투항할 건데 찍어서야 되겠냐고들 하지유”라고 전했다.
한나라당의 공중 지원도 대단하다. 이 전 시장뿐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도 일찌감치 이곳을 찾아 정권교체를 호소했다. “대선주자가 대신 선거한다는 비아냥이 들리기도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다”고 캠프 관계자는 말했다.
선거가 팽팽해지면서 그러지 않아도 표심을 속시원히 털어놓지 않는 대전 유권자들의 입이 더 무거워졌다. 택시기사 최모씨에게 선거 전망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온다. “이번엔 진짜 모르겠시유.”
대전=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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