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1조 1항에 명시돼 있듯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개인 권리(민주주의)와 공동체 통합(공화주의)의 조화를 추구하는 정치체제다. 1948년 제헌부터 확립된 민주공화제의 기원을 놓고 학계에선 미국, 독일, 일본 등 외래 헌법에서 이식된 결과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최근 발행한 계간 <정신문화연구> 2007년 봄 호는 이런 통념을 깨고 한국의 민주공화제가 19세기 후반부터 일찌감치 내부적 요청과 성찰을 통해 모색됐다는 기획논문을 싣고 있어 관심을 끈다. 정신문화연구>
이동수 경희대 교수는 <독립신문> 연구를 통해 구한말 개화파가 추구했던 근대국가가 공화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독립신문>
그 근거로 먼저 이 신문이 한글을 사용했고 일반 백성의 투고에 지면을 넉넉히 할애해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등 국민통합 기능에 충실했다는 점을 든다. 또 이 교수는 <독립신문> 이 백성 위에 군림하는 정부 관원들을 비판하면서 법에 의한 통치를 꾸준히 주장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독립신문>
물론 군주제를 묵인하거나 지나치게 엄격한 법치를 주장하는 등의 한계가 있지만 <독립신문> 은 한국형 공화민주주의의 원형을 제시한 중요한 시도라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독립신문>
오문환 경희대 연구교수는 천도교 사상에 내재된 민주공화주의를 분석한다. 오 교수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자천자각(自天自覺) 사상에 서구와 구별되는 독특한 주체성이 담겨 있다고 해석한다.
단순히 자유주의적 개인을 강조하는 차원을 넘어 구성원 각자가 공동체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민주공화주의적 정치주체를 정립하는 역할을 해냈다는 것이다. 천도교가 3ㆍ1운동을 주도하고 임시정부 내에서 공화국 수립안을 활발히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근대적 정치사상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필자는 진단한다.
3ㆍ1운동 전후로 국내와 만주ㆍ연해주에서 일어났던 왕정복고운동을 반(反) 공화주의적 행태로 치부해선 곤란하다는 내용의 논문도 있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왕정복고가 단순히 왕정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외세 방어와 정치 안정에 효과적인 체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론이라고 분석한다.
아울러 국왕중심론-군신공치론 간의 유서 깊은 대립이 왕정복고-공화주의 갈등이라는 근대적 형태로 표출됐다고 박 교수는 주장한다.
연세대 서희경ㆍ박명림 교수는 우선 한국 건국헌법의 모체는 외국이 아닌 임시정부 헌법이었다고 밝힌다. 두 교수는 “두 헌법은 체계나 용어, 기본원칙, 이념 등에서 분명한 연속성을 보인다”면서 이런 점에서 유진오보다는 임시정부 헌법을 기초한 조소앙을 ‘한국 헌법의 아버지’로 삼을 만하다고 주장한다.
또 필자들은 한국 헌법의 바탕을 이루는 핵심원리는 자유주의나 시장경제주의가 아니라 균등ㆍ공공에 바탕한 민주공화주의였다고 지적한다. 54년 개헌 때 미국의 요구로 시장경제 원칙이 대폭 도입됐지만 여전히 공화주의는 헌법정신의 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게 논문의 주장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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