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관련 ‘2ㆍ13 합의’실현의 첫 시험대였던 북측의 핵시설 폐쇄조치가 이행되지 않은 채 ‘60일 시한’을 넘기게 되자 합의를 주도했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의 입장이 곤혹스러워지고 있다.
힐 차관보가 15일 아무 소득 없이 베이징(北京)을 떠나 귀국하기 직전, “중국이 인내심을 갖고 며칠 더 기다려보라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것 같다”는 말을 되풀이 한데서도 그가 처한 진퇴양난의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의 발언은 북한의 합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해 미측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북한에 대해 영향력이 있는 중국만을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처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힐 차관보가 나아가 “중국은 모든 참가국들이 초기조치를 이행하도록 해야 할 특수한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 것에서는 책임 소재와 관련해 중국측을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의도까지 엿보인다.
힐 차관보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는 것은 ‘2ㆍ13 합의’도출의 영광을 누렸던 사람은 합의이행 불발의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정에서 비롯되고 있다.‘2ㆍ13 합의’는 북한의 단계별 핵 폐기 조치와 그에 따른 보상 및 동시행동 원칙을 담고 있지만 합의 불이행에 대한 벌칙 등 강제수단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완전성이 예견됐다고 봐야 한다.
힐 차관보는 한국측이 떠맡고 있는 중유 첫 선적분 5만톤을 주지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북한에는 큰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6자 회담의 완전 파탄을 각오하지 않고는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제재나 압박을 언급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힐 차관보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 내 상황도 간단치 않다. 힐 차관보는 재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동결자금을 해제하는데 많은 힘을 소진했다.
힐 차관보가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의 신임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재무부를 상대하는 일이 수월했을 리는 없다. 때문에 북한의 핵시설 폐쇄조치 불이행 상태가 며칠을 넘겨 장기화할 경우, 힐 차관보는 ‘원칙을 저버린 타협으로 일을 그르친 인사’로 재무부 등 강경세력의 반격대상이 될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15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공화당 내 강경파로부터 공격 받기 쉽게 됐다고 보도, 강경세력의 반격이 현실화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공화당내 매파들이 BDA 북한 동결자금을 돌려주기로 한 것은 실수라고 주장해왔고 북한이 핵 연료 생산을 중단하고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점에 의문을 제기해왔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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