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혁명, 장미(벨벳)혁명, 튤립(레몬)혁명….
동토의 땅에 민주화 훈풍을 불러일으킨 구 소련연방 국가들의 ‘색깔혁명’이 장기간의 정정불안과 반정부시위로 퇴색하고 있다.
색깔혁명은 무지갯빛 이름처럼 부패와 침체, 선거부정으로 점철된 옛 체제를 종식하고 민주주주의 승리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키르기스스탄(튤립)과 우크라이나(오렌지), 그루지아(장미) 등에선 대통령에 대한 반정부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15일 AP통신에 따르면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엔 6,000여명의 시위대가 중앙광장으로 몰려와 5일째 텐트와 전통천막을 치고 대통령 사임을 요구하는 장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쿠르만벡 바키예프 대통령은 2005년 3월 튤립혁명, 레몬혁명으로 불리는 민주화혁명으로 아스카르 아카예프 전 대통령을 축출하고 야당지도자에서 최고 권력자로 변신했지만, 취임 이후 정실주의와 부패 혐의, 정쟁 등에 시달리고 있다.
대통령을 길들이려는 드센 입법부, 남북 지역 사이의 권력 투쟁, 부패 진압과 경제 활성화에 실패한 현 정부의 무능력과 대통령 권한 강화 야욕 등이 키르기스스탄을 정치적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는 원인들이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수천명의 시위대가 수도 키예프의 메인광장에 모여 의회해산에 반대하는 반정부시위를 벌이고 있다. 2005년 1월 오렌지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빅토르 유시첸코 대통령은 2일 야누코비치 총리가 주도하는 의회가 사사건건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며 의회 해산 명령을 내리고 조기 총선 실시를 발표했다.
그러나 현정부의 개혁 성과에 대한 실망으로 지난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야당은 의회 해산 명령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데 이어 대통령 탄핵까지 주장하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색깔혁명의 ‘1번 타자’였던 그루지아는 경제개혁이 야기한 고통과 더욱 커진 빈부격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2003년 미카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을 권좌에 오르게 한 장미 혁명이 의회까지 장밋빛으로 물들여 여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덕분이다.
그러나 색깔혁명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이 국가들이 야당탄압으로 잿빛의 뿌연 안정을 구가하고 있는 러시아보다는 낫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스티브 파이퍼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는 “위험이 따르는 어려운 정치 상황이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민주 선거로 뽑힌 의회 다수당 사이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민주적”이라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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