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장 자크 아노 감독, 1986)은 다양한 해석과 해설이 가능한 많은 요소들을 구석구석에 숨기고 있다. 교회, 가난, 전염병, 악마, 마녀, 이단, 기적. 하나하나가 이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14세기 유럽, 혹은 좀 더 넓혀서 우리가 중세 유럽이라고 이야기하는 시대를 해석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장미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이 영화의 뼈대를 이루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서양의 중세를 이해할 수 있는 고리들을 여럿 손에 쥘 수 있다.
영화 속의 여러 공간들 중에서 내게 가장 매혹적인 장소는 수도원의 장서각. 영화 속의 연쇄 살인은 장서각을 지키던 원로 수도사 호르헤가 저지른 것이다.
아델모, 베난티오, 베렝가리오, 세베리노, 말라키아 등 영화 속에서 살해된 인물들은 모두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는 내용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의 유일한 필사본이 장서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다. 시학>
그들은 모두 이 책을 몰래 읽어보다가 호르헤에게 독살당했다. 호르헤는 웃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시학> 이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것에 대한 집착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졌다. 눈이 빠른 사람들이라면 영화에서 스쳐가는 화면들 속에서 인체 해부도나 천문도 같은 것들이 장서관 안에 <시학> 과 함께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시학>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지식들이 왜 수도원의 장서각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장서각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호르헤의 노력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과학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과학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로부터 찾는다. 우주가 물, 불, 혹은 공기 따위로 이루어졌다는, 우리가 보기엔 한심한 주장을 한 그들을 왜 과학의 시조라고 부를까.
그것은 그들이 세계를 하나의 틀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7세기 사람인 탈레스 이후에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자연 현상을 설명하면서 초자연적인 원인을 들먹이지 않고 자연 안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 설명이 일관된 체계를 갖출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그리스 과학을 집대성한 이가 아리스토텔레스인데 그 이후에는 자연철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참 동안 눈에 띄는 진보가 별로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기독교가 힘을 갖게 되자 재능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자연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우리가 암흑 시대라고 부르는 중세가 시작된 것이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중세가 결코 암흑이라고 만은 할 수 없는 나름의 활기를 가지고 있었고 기술적으로도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세 유럽에서 자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더구나 지적인 활력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중세 사람들의 관심 밖에 놓여 있던 자연에 대한 지식들은 수도원의 장서각 안에 묻혀 있었다. 아니, 많은 부분은 유실된 채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중세가 끝나 갈 무렵의 교회는 웃음이나 과학이 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행여 앗아갈까 조바심을 쳤다.
이러한 조바심은 13세기에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중 일부와 그 주석서들에 대한 금지령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호르헤의 집착은 이러한 움직임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쉽다.
어느 체제이든 그 체제가 꺼리는 지식들이 있게 마련이다. 심한 경우, 힘을 가진 자가 그 지식의 유포를 ‘금지’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근까지도 반공 이데올로기를 방패 삼아 접근은커녕 입에 올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책들이 이러한 금지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금지가 영원한 법은 없다. 언젠가는 해제되고, 아니 파괴되고 갇혀 있던 지식들은 자유롭게 유통된다. 금지된 지식의 해방과 시대 상황의 변화는 서로 상승 작용을 하면서 급작스레 일어난다.
성경 이외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던 사람들이 다시 자연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제시되어 있지만 하나의 답으로 정리하긴 힘들다.
분명한 것은 12, 13세기 무렵부터 이런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 영화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영화의 주인공 윌리엄이 늘 “나의 위대한 스승”이라 일컫는 로저 베이컨이 이러한 태도를 대변한다.
13세기 영국의 고전학자였던 그는 실험을 강조했고 유럽에서 안경을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도 유명한데 이 안경이란 물건이야말로 자연에 대한 진지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로마 시대부터 볼록렌즈의 성질이 널리 알려졌던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것을 안경으로 사용할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로저 베이컨은 렌즈로 근시를 교정할 생각을 해낸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렌즈는 망원경과 현미경의 형태로 자연을 관찰하는 도구로 자리잡았다. 자연에 렌즈를 들이댄다는 것. 영화에서 윌리엄이 렌즈를 코앞에 대고 이것저것 유심히 살피던 모습이 던지는 이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영화의 배경인 14세기는 우리가 과학 혁명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진 17세기와는 시간적으로 거리가 있다. 하지만 과학 혁명을 준비하는 많은 조짐들이 이때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에선 장서각이 불타고 번역사와 필경사들이 죽어 나가지만 장서각과 번역승들은 금지된 지식을 유포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실제로 14세기는 수도원에 보관된 옛 지식들이 서서히 복원되고 아랍으로 흘러 들어갔던 과학 지식들이 대규모 번역 사업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자연에 대한 관심의 복원이 사회적 변화들, 예컨대 지리상의 발견, 경제의 팽창 등과 중첩되면서 지금까지 계속되어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근대를 구성하는 원리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중세에 드리워진 기독교의 장막을 암흑이라 부른다면 그것을 걷어낼 근대 과학, 근대 정신이 한 줄기 빛으로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 남부 유럽 점령 이슬람세력… 선진 과학문명도 함께 이식
아랍에서 과학이 융성했던 시기는 서유럽에서 과학이 쇠퇴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아랍과학의 전성시대는 800∼1200년이었고 그 시기의 서유럽에서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두 기독교에 심취해 있었다.
서유럽 과학을 중심에 놓고 해석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표준적인 해석은 7세기에 무함마드의 등장으로 기틀을 잡기 시작한 아랍 문명이 고대 중국과 인도의 동양과학과 그리스의 서양과학 등 여러 과학을 흡수해서 수준을 더욱 높이고 다시 서구로 넘겨주었다고 본다.
아랍 과학의 시작도 수입과 번역에서 출발했다.
아랍 아바스 왕조의 2대왕 알 만수르 때 인도의 천문학이 아랍어로 번역되었고 5대왕 알 라시드는 그리스 책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7대완 알 마문은 830년 대학, 도서관, 연구소, 번역센터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을 설립해서 그리스 학문의 번역을 지휘했다. 이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 갈레노스, 프톨레마이오스 등의 저작이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작업을 바탕으로 수학, 천문학, 광학, 연금술, 의학 등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과들이 나왔다.
이슬람 세력은 711년부터 1492년까지 800여 년 동안, 현재의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아랍 과학은 만개했다. 도서관과 대학 실험실이 번창했고 철학과 예술에서도 많은 진보가 있었다.
이들이 물러나면서 남긴 아랍의 서적들과 다시 발견된 그리스의 문헌들을 라틴어로 번역하고 필사해서 널리 알리는 작업이 서유럽에 새로운 지적 활력을 주었고 근대 과학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영화 속의 장서각은 바로 그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평론가ㆍ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주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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