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1시 경기 성남화장장. 한 줌의 재로 변한 허세욱(54)씨의 유골이 유택공원으로 향했다. 목메어 우는 유족들이 따를 법 했지만 그런 장면은 없었다. ‘한미 FTA 반대’를 외치며 몸을 불사른 허씨의 유골은 한 유족의 점퍼에 감춰진 채 총총히 옮겨졌다.
“마지막 길에 인사 한번 하고 싶다”며 한미 FTA반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관계자 수십 명이 막아 섰지만, 유족은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가족장과 열사장을 각각 주장한 유족과 범국본간의 대립은 유택공원의 대형봉분 꼭대기에서까지 이어졌다. 유족들이 오열하는 사이 범국본측은 조가(弔歌)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허씨를 보냈다. 이들은 이후 서로 뒤도 쳐다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양측의 갈등은 이날이 처음은 아니다. 허씨가 분신한 1일부터 사사건건 대립했다. 4일 피부이식 수술을 둘러싸고 유족은 ‘고인이 편히 하늘로 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반대했고, 범국본은 ‘유서에서 동지들에게 뒷일을 맡긴 만큼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강행했다.
이에 반발한 듯 유족은 수술 뒤 면회를 가로막았고, 15일 허씨가 사망하자 10분도 안돼 다른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겼다. 허씨의 조카는 “민주노총이 삼촌의 분신을 방조한 심증이 간다”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유족은 허씨가 사망한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은 이날 아침 화장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 했다. 분신에서 화장까지 양측은 그 어떤 점에서도 접점을 찾지 못한 셈이다.
보름동안 대화나 타협은 이들의 안중에 아예 없는 듯 했다. 허씨의 죽음에서 한미 FTA를 둘러싸고 대화와 타협은 외면한 채 진보와 보수가 벌인 대립과 갈등을 다시 한번 더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부디 대화와 타협이 있는 세상에서 거듭나시길,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정민승 사회부기자 ms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