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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미지쇼핑, 정책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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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미지쇼핑, 정책쇼핑

입력
2007.04.16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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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쇼핑’이다. 요모조모 따져 가장 맘에 드는 제품을 사듯, 정치소비자인 유권자가 최선의 정치상품, 후보를 고르는 것이 선거다.

다른 점도 있다. 일반 상품은 아무 때나 살 수 있지만 정치쇼핑은 5년에 한번 서는 큰 장, 대통령 선거에서만 가능하다. 교환ㆍ환불도 잘 안된다.

또 일반제품은 내가 고른 것을 내가 쓰지만, 정치상품은 내 선택과 관계없이 다수 소비자가 뽑은 것을 5년 내내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구매하고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음 번엔 다른 제품으로 교체하는 쇼핑의 기본원리는 다를 게 없다.

시대가 변하면 정치쇼핑의 기준과 패턴도 변한다. 유신부터 5공화국까지 한국에 정치시장은 없었다.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경쟁이 없는 ‘독과점 상품’이었고, 정치 소비자들은 이 ‘독점재(財)’의 선택을 강요 당했다. 한명의 후보를, 그나마 체육관에서 뽑았던 정치과정은 쇼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강제배급에 가까웠다.

다수경쟁의 정치시장은 1987년 민주화와 함께 탄생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한가지 상품에만 너무 길들여졌던 탓일까. 정치소비자들은 여태껏 써왔던 것과 유사한 제품(노태우)을 다시 선택했다. 물론 대체재(김영삼 김대중)들의 과당경쟁과 분열, ‘내 고장 제품’만을 고집한 유권자들의 지역주의도 결정적 요인이 됐다.

1997년 대선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투표에 의해 제품과 메이커(정당)가 한꺼번에 교체된 대사건이었다. 정권교체 열망과 환란 심판 등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결정적 요인은 역시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이라는 획기적 마케팅 전략이었다.

당시 야권은 한 표로 두 사람을 지지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Buy one Get one Free’ (하나를 사면 하나를 공짜로 더 얹어주는 것)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당겼던 것이다. 현 정부를 탄생시킨 ‘노무현+정몽준’ 조합도 같은 전략이었다.

이제 5년 만에 다시 쇼핑에 나서는 유권자들은 어떤 기준을 갖고 있을까. 또다시 내 고향 제품만을 고집할까. ‘Buy one Get one Free’상품에 또 한번 쏠리게 될까. 그러나 정치권의 기대와는 달리, 이번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올 12월 쇼핑테마는 ‘품질’이다. 콘텐츠이자 정책이다. 철학과 비전이 담긴 정책, 그러면서도 실현가능한 정책, 달콤하지만 당선만 되면 뒤집어질 정책이 아니라 당장 인기는 없더라도 나라경제의 장래를 위해 불가피함을 설득할 수 있는 정책… 이런 정책으로 무장된 후보가 당선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 시점까지 정책은 없다. 샐러리맨 신화를 일군 CEO출신,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통령의 딸, 최고의 기업환경을 만든 전 지사, 당대의 경제석학까지.

한결같이 한국경제의 해결사임을 자처하지만, 정작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이미지’와 ‘이벤트’일 뿐 정책은 어디에도 없다. FTA 부동산 연금 등 핵심현안에 대해 구체적 해법을 듣고 싶지만, 자칭 경제전문가 후보들이 하는 얘기는 두루뭉실한 원론적 답변뿐이다. 품질판단의 근거가 없다.

더 이상 옛날 소비자가 아니다. 한없이 깐깐해졌다. 정치소비자도 마찬가지다. 12월 정치쇼핑은 정책쇼핑이지 이미지쇼핑이 아닐 것이다.

이성철 산업부 차장 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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