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와이오밍주 질레트에 사는 초등학생 브리태니 번스(12)는 버스 정류장에 나갔다가 이웃 아이들로부터 “뚱땡이” “토실토실 뚱보”라는 심한 놀림을 받았다. 키 158㎝인 브리태니의 몸무게는 81㎏. 그러나 그와 그의 가족은 지난해 캠벨 카운티 교육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을 때만큼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브리태니가 교육구의 최고 비만아동들을 위한 ‘방과후 건강관리’ 대상에 해당하니 주 3회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편지를 받았을 때, 그의 어머니는 당황스러움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그는 “나는 산수와 읽기 같은 걸 배우라고 딸을 학교에 보냈다”면서 “내 딸의 몸무게는 학교의 관심사가 아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동비만을 퇴치하기 위한 교육기관의 지나친 노력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발에 부딪쳐 역풍을 맞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4일 보도했다. 비만아동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뚱보’의 낙인을 찍음으로써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거나 또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2~19세의 아동 및 청소년 중 17%가 과체중인 미국은 30년새 3배로 늘어난 아동비만을 퇴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칸소와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는 비만 여부를 판가름하는 학생들의 체질량지수(BMI) 측정을 의무화했으며, 대부분의 주에선 교내에 설치된 청량음료 자동판매기를 퇴출했다. 학생들이 하루에 구입할 수 있는 과자의 수를 제한한 학교(펜실베이니아 노리스타운의 스튜어트 중학교)가 있는가 하면, 급식을 한 그릇 이상 먹지 못하도록 강제한 곳도 있다(질레트시 교육구).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라는 점에서 올바른 생활습관을 만들어주는 이 같은 조치가 필수적이라는 옹호론도 있지만, 상처 받을 아이들을 우려한 학부모들의 항의는 계속되고 있다. 질레트의 레이크뷰 초등학교에 다니는 제레미(9)의 어머니 스테파니 홀웰은 성적표의 건강평가란에 표기된 ‘비만’ 표시를 보고 교장에게 지워줄 것을 요청, 동의를 받아냈다. 자녀의 감수성을 고려해 방과후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통지를 숨긴 학부모도 많아 통지를 받은 질레트시의 200가정 중 23%만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처럼 비만퇴치 노력이 역풍을 맞자 미국 최초로 학생들의 BMI 측정을 의무화했던 아칸소주는 지난해 규정을 철회, 학부모가 원할 경우 측정을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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