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쪽빛 바다 위로 흩뿌려진 11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한 경남 통영시 산양읍 앞 바다. 읍내 연명마을 부두에서 뱃길로 10여분 거친 물살을 갈랐을까. 다도해 입구에 자리잡은 한국해양연구원 관리사무동이 한 눈에 들어온다. 1998년부터 이 곳을 지켜온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생물자원연구본부 박용주(48) 책임기술원이 반갑게 맞은 후 앞쪽을 가리킨다.
“저기 보이시죠, 사무동 앞 바다(2,000㎡)에 가두리 양식장이 있는데, 어린고기(치어ㆍ稚魚)들을 방류하기 전까지 키우는 일종의 보육센터(중간 육성장) 같은 곳입니다. 이 녀석들이 잘 커서 어획량이 지금보다도 훨씬 늘어나면 그 보람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바다 위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낸 이곳, ‘중간 육성장’을 통해 5㎝ 남짓한 치어가 2,3개월 뒤 방류 적정 크기인 8㎝ 가량으로 자라게 된다. 연간 300만 마리의 치어가 어미고기로 방류되는 이 일대의 바다 밑에 물고기들을 위한 거대한 ‘인공 도시’가 조성되고 있다.
박 기술원은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듯이 물고기도 치어 단계에서부터 얼마나 자연적응력을 높이는가에 따라 상품성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관리원 정인출(47)씨는 “자식처럼 키웠던 치어들이 어느 새 쑥 자라 가두리를 떠날 때에는 눈물이 다 날 정도”라면서도 “갈수록 어획량이 줄어 이 곳이 수산자원의 마지막 희망이자 보고”라며 거들었다.
이른바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을 위해 우리나라가 1998년부터 핵심적으로 추진 중인 ‘바다목장’ 사업. 바다목장은 쉽게 말해 육지 농장과 달리, 울타리 없이 일정한 연안어장에 인공구조물(인공어초ㆍ해중림어초) 등을 인위적으로 설치, 수산자원의 산란 및 서식장을 조성한 뒤 ‘음향급이기(acoustic feeding system)’ 등을 통해 고기가 가지고 있는 청각 능력(귀, 측선, 부레를 이용)과 먹이를 이용하는 조건반사 훈련으로 고기를 유인해 모으는 어업 시스템이다. 먹이를 줄 때마다 동일한 음파를 보내 물고기를 훈련시켜 연안어장에 정착을 유도하는 것이다.
바다목장은 98년 경남 통영 앞바다를 시작으로 현재 여수, 울진, 태안, 북제주 등 5곳이 시범 운영되고 있다. 2010년까지 총 1,589억원이 투입되며, 향후 10여 곳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바다목장이 예정대로 조성된다면, 이 일대 해역의 자원량도 98년 118톤이던 것이 2003년 423톤, 2016년에는 무려 7,189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어획량도 덩달아 98년(53톤) 2003년(192톤)에 이어 2016년 3,307톤으로 급증할 것으로 한국해양연구원측은 분석했다.
한국해양연구원 바다목장사업단 관계자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어업환경 여건에 대응하고, 지속적인 어업생산을 위해 10년 가까이 추진돼온 바다목장 사업의 첫 결실로 통영이 대 성공을 눈 앞에 두고 있다”면서 “통영에 이어 여수(2009 예정), 울진 태안 북제주(2012년 예정) 등도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통영은 바다목장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신호탄이다. 240억원을 들여 국내에서 가장 먼저 바다목장이 조성된 통영에는 현재 볼락과 우럭, 감성돔 등 6개 어종(884만 마리)의 종묘 방류, 844개의 인공어초 및 42개소의 인공 해조장 등이 바다 밑 목장을 형성하고 있다. 가시적인 성과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어획량 증가 등으로 인한 직접효과가 2002년 6억6,200만원에서 2004년 10억2,600만원, 2016년 228억5,100만원으로 껑충 뛰고 있다. 또 낚시와 관광 등으로 인한 간접효과도 2002년 22억5,300만원, 2004년 34억2,700만원, 2016년 64억6,800만원으로 최근 해양연구원 경제타당성 연구결과에서도 나타났다. 11개 어촌을 대상으로 한 가구 당 어업소득은 2002년 1,290만원에서 2016년 2,233만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통영 성공신화’의 주역은 이곳 12개 어촌계(296명)가 중심이 돼 구성된 ‘바다목장자율관리위원회’. 차홍기(55) 위원장은 “어구와 고기 몸길이는 물론, 조업시간까지 제한해 처음에는 볼멘 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지만 고갈된 어족자원의 증식이라는 큰 틀에서 정부의 지침을 잘 따랐다”며 “당장 눈 앞의 이익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며 일부 어민들의 무분별한 조업관행에 일침을 가했다.
통영에 이어 2004년부터 시작된 여수 바다목장(화정면 일대 151㎢)도 모두 307억원이 투입돼 현재 감성돔 등 6개 어종 407만의 종묘를 방류했으며, 인공어초 1,137개 및 음향급이기 등이 설치됐다. 태안(안면읍ㆍ337억원) 울진(평해읍ㆍ355억원) 북제주(한경면ㆍ350억원) 등 3곳의 바다목장 사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시설투자 등이 이뤄져 우리나라 바다목장 조성사업에 희망의 빛을 이어갈 전망이다.
해양수산부 김성범(40) 자원관리과장은 “바다목장이 성공해 주 대상어종이 늘어나면 어획량은 물론 어민들의 소득도 덩달아 증가하게 된다. 여기에 낚시 등 관광에 따른 간접효과도 무궁무진하다”며 “자원회복 계획의 일환인 바다목장 사업이 수산자원을 늘리고 미래 우리나라의 어업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통영=이동렬기자 dylee@hk.co.kr김종한기자 tellme@hk.co.kr
■ 외국의 바다목장은…
일본은 1960년대부터 적극적인 자원 배양형 어업개발을 위한 연구를 시작, 70년대에 연안어장 정비 및 어업구조개선 등 해역 개발과 연어, 송어의 대량 배양기술 개발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80년대에 들어서는 200해리 시대에 대비한 연근해 유용생물자원의 배양을 위해 해양목장기술개발연구계획(Marine Ranching Programㆍ1980~1995)을 바탕으로 오이타현을 비롯해 현재 20여 곳에 바다목장을 운영 중이다. 그 결과, 넙치의 경우 바다목장을 설치한 지역의 생산량이 설치하지 않은 지역보다 많게는 30%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참돔도 평균 10%의 증가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일본은 해양생물의 초기 사망요인의 규명과 환경조건의 관리 및 개선기술 개발을 위해 ▦어패류 생존율 향상(해적생물구제, 사료개발) ▦환경제어기술(생활환경 최적관리기술) ▦생산시스템기술(인공어초 개발, 해조장 조성, 보호수면 설치, 어장개량) ▦복합형 자원배양기술(생태, 생활사, 해양특성 등 복합생산기술개발 연구) ▦지원기술(환경모니터링기술에 의한 최적생활권 확대) 등에 관한 연구와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들어 새로운 소재 및 공학기술을 자원관리 및 생산시스템에 접목시키는 연구도 활발한데, 소리를 이용해 방류한 어군(고기 떼)을 관리하는 음향급이기 시스템이나, 바다목장의 에너지원으로써 태양열을 이용하려는 ‘Sunshine 계획’ 등이 추진되고 있다.
노르웨이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정부 주도로 가리비, 유럽산 닭새우, 연어, 대구 등을 대상으로 ‘Sea Ranching’ 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특히 닭새우를 대상으로 하는 바다목장 사업은 닭새우가 일정한 수중 이상으로 내려가지 않는 점을 이용, 일정 수역에 자연석을 바닥에 설치해 새끼를 방류하여 수확하고 있다.
최근 중국도 경남 통영의 바다목장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해양목장화를 위한 기반연구에 착수했으며 미국,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들도 1995년부터 바다목장화 기반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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