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측정을 하겠습니다." "(외교관 신분증을 보여주며) 한국에 부임한 외교관인데, 업무 때문에 조금 마셨으니 봐주세요." 이 외교관은 음주측정도 받지 않고 통과한다.
외교파티 후 약간의 술을 마신 주한 외교사절은 이렇게 빠져나간다. 모든 운전자들이 음주측정을 받지만 외교관들은 특권을 누린다.
경찰도 외교관이란 신분만 확인되면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음주측정을 강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대게 음주측정을 면제해 준다. 외교관들도 외교행사장엔 언제나 와인이나 맥주 등 주류가 제공되고 건배도 중요 의식 중 하나이기 때문에 심하지는 않지만 심심찮게 약간의 음주운전은 하는 편이다.
외교관은 주재국에서 여러 가지 외교특권을 누린다. 그중 음주운전은 특권이 악용되는 사례다. 국제법상 민ㆍ형사상 광범위한 특권을 누려서인지 외교관들은 도로교통과 관련해 버스전용차선이나 고속도로 갓길을 질주하고 무단주차를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불법 행위를 다 눈감아 주지는 않는다. 서울시는 도로교통법을 위반해 과태료를 체납한 대사관을 매년 발표하고, 여론의 질타로 인해 대사관은 본국으로부터 경고를 받는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외교적 특권을 인정해야 할까? 지난 12월 중국외교관이 음주측정을 거부한 채 8시간30분간 경찰과 대치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외교통상부는 각 대사관에 음주운전 단속 지침을 내려 보냈다.
"외교관에게 음주측정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신분 확인은 해주어야 강제하지 않는다"는 게 요지다. 그런데 일부 외교사절은 이를 '비엔나 협약'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발레리오 아르테니 주한루마니아 대사는 "외교차량 역시 외교적 특권을 누리는데, 한국 정부의 지침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다른 대사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실 중국 외교관을 붙잡아 놓은 경찰의 행동은 외교가에서 논란의 대상이었다. 다만 이 지침에 따르면 신분확인을 한 경찰이 옳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상호주의 원칙이다.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주한 외교사절의 특권을 보다 엄격히 적용할 필요는 있지만 우리가 엄격하게 적용하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 외교관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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