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허조그 지음ㆍ이경식 옮김 / 황소자리 발행ㆍ408쪽ㆍ2만3,000원
시험장의 부정행위로 흔히 생각하는 ‘커닝’(cunning)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안다’는 뜻의 불규칙 동사 ‘can’이다. cunning은 16세기 이전까지는 ‘지식’(knowledge)을, 18세기에는 ‘숙련된’ ‘알고 있는’ ‘가르침을 받은’ ‘익힌’ 등을 각각 의미했고 그 이후에는 ‘교묘하게 속이는’ ‘비열한’ ‘계획적인’ ‘계략을 쓰는’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미국 미시간 대에서 법률과 정치철학을 강의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컨닝 즉 교활함이 언제든 속임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군주라면 모름지기 야수의 잔인함을 배워야 하고 사자와 여우의 흉내를 번갈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을 인용한 것은, 신민과 군대를 통솔하는 군주가 전체의 목적을 위해 잔인함과 교활함을 사용해야 하고 그것이 곧 백성의 이익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일상과 전통 관습에서는 결코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은 요소가 정치에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군주론>
저자는 이 같은 교활함이 국가 권력을 손에 쥔 군주나 정치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 속의 수많은 일화들을 열거하며 교활함은 개인의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의 제도, 학문과 사상 등에 녹아 있다고 주장한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격언이 있지만 현실에서 정직이 개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개인과 사회에 내재한 교활함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책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논지와 사상에 대해 끊임 없는 회의하고 자유로운 사고와 상상력을 펼치라고 권유한다. 따라서 교활함에 대해서도 선악의 이분법적 잣대로 예단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하지만 교활함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좀 답답한 생각도 든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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