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을 지키기 위한 침묵이냐, 생존을 위한 거짓 증언이냐.”
11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연극 <시련> (아서 밀러 작ㆍ윤호진 연출)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그러나 제3의 정답을 허용하지 않고 양단 간에 즉답을 강요하기 때문에 답변은 녹록치 않다. 말 그대로 ‘가혹한 시련’이다. 시련>
<시련> 은 17세기 미국의 마녀사냥을 모티프 삼아,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을 그린 작품이다. 매카시즘의 희생양이었던 아서 밀러는 이 작품을 통해 미국의 수치스러운 기억을 고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념과 생존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개인과 사회의 고민과 욕망을 들추어낸다. 시련>
17세기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세일럼. 어느 날 저녁 한 무리의 소녀가 숲 속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으로 연극은 시작한다. 안개 자욱한 숲에서 소녀들이 발가벗고 뛰어다니거나 주술적인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앞으로 닥칠 마녀사냥을 예고한다.
소녀들은 숲 속의 기괴한 의식을 추궁 받자 악마를 보았다고 거짓 자백하고 주민들 역시 악마를 목격했다고 가세하면서 서로 무고한 사람을 악마의 화신으로 고발하는 사태가 잇따른다.
연극 <시련> 의 원제는 'The Crucible'이다. ‘가혹한 시련’이란 뜻 외에 ‘도가니’란 사전적 의미가 있다. 숲 속 모임을 주도한 소녀 아비게일로 인해 마을 전체가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는 전반부와, 아비게일과의 떳떳하지 못한 관계를 드러내면서까지 신념을 지키려 한 존 프락터의 고뇌를 그린 후반부는 원제가 가진 중의적 의미를 무대 위에 고스란히 구현해 낸다. 시련>
사회성 짙은 줄거리와 3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은 관객에게 이 작품이 어렵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연출가 윤호진은 “원작을 충실히 따르겠다”고 약속에 따라 정공법을 택했다. 지각입장자의 조심스러운 발소리마저 들릴 만큼,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무대에 집중한다. 최근 관객들이 가벼운 작품만 찾는다는 비판을 무색케 한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서슴없는 이 시대에 연극 <시련> 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 말로는 ‘다양성’을 주장하지만 다수의 취향과 판단 그리고 유행에 자유롭지 못한 현대사회의 씁쓸한 자화상을 그리는 게 아닐까. 29일까지 화~금 오후7시30분, 토ㆍ일 오후3시, 28일(토)은 오후3시 7시30분. (02)580-1479 시련>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