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윤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발행ㆍ268쪽ㆍ1만5,000원
아기자기한 꽃, 알록달록한 나비, 왱왱 날아다니는 벌… 울울창창한 숲에는 생기발랄한 생명체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같이 생명력이 충일한 대상을 제쳐두고 ‘죽음’ 의 연구에 몰두한 이가 있다.
<신갈나무 투쟁기> (1999) <숲의 생활사> (2004) 등 대중 눈높이에 맞춘 생태교양서를 여러 권 펴낸 식물학자 차윤정씨가 이번에는 허리를 굽혀 죽은 나무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숲의> 신갈나무>
말라붙은 가지, 갈라진 줄기 틈에 들어찬 곰팡이, 옹이에 걸린 거미줄, 잘려나간 뿌리…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들로 고사목을 바라보면 영락없는 흉가의 모습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 책에서 ‘나무의 죽음을 통해 숲은 얼마나 풍요해지는가’ 라는 역설적인 진리를 설파한다.
통계만 살펴도 그 역설을 실감할 수 있다. 숲 바닥에 쓰러지는 죽은 나무는 ㏊ 당 1년에 1.2그루다. 하지만 숲 전체 낙엽과 떨어진 가지의 50%는 죽은 나무의 목질에서 나오고, 전체 숲 생물종의 30%가 이 죽은 나무에 의지해 살고있다.
‘탁탁탁’ 하는 천공(穿孔) 소리로 나무의 레퀴엠을 연주하는 딱따구리, 죽은 나무껍질의 틈 속에 알을 낳는 사슴벌레, 축축한 나무 속을 거처로 삼아 고사목을 점령하는 흰개미떼, 나무 속에 침투해 생명을 유지하는 버섯균, 죽은 나무의 밑둥을 겨울잠의 보금자리로 삼는 도마뱀, 개구리, 곰… 죽은 나무는 자연스럽게 숲의 공동자산이 된다.
무미건조한 설명이 아니라 고사목이 허물을 벗는 과정을 묘사하면서도, ‘아무리 완강한 수피(나무껍질)라도 언젠가 나무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인을 잃은 호위무사는 이제 주인의 모든 것을 정리해주는 늙은 집사가 됩니다.
늙은 집사는 주인의 모든 것이 드러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주인의 명예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같은 문장을 선물하는 지은이의 글 솜씨도 매력적이다.
동료 식물학자인 남편과 함께 한국의 청계산과 남산, 중국의 하얼빈, 미국 오레건주의 숲 속에서 발품을 팔아가며 찍은 150여장의 사진에서도 정성이 묻어난다. 차씨는 “늙고 죽어가면서 많은 것을 베푸는 나무의 이야기를 통해, 젊고 싱싱한 것에만 열광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성찰의 기회를 준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책은 죽음의 이야기이자 생명의 이야기이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생각해보라. 이 세상에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가 어디 있으랴. 나 같은 바보도 시는 쓰지만 신 아니면 나무는 만들지 못한다’고 노래한 조이스 킬머의 시 구절을 떠올리며 그 깊은 울림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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