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간 '경계인' 다시 조국에 말걸기후마니타스 발행ㆍ312쪽ㆍ1만5,000원
‘사별이라면 이미 곡성을 삼켰겠지만, 생이별이라 마냥 슬프기만 하네. 강남은 열병 몰아치는 땅이건만, 쫓기는 그대 아무 소식도 없구나…물 깊고 성난 파도는 거치니, 부디 교룡에게 붙잡히지 말게나.’
2003년 여름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에게 이백(李白)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읊은 두보(杜甫)의 시가 전해졌다. 누군지 모를 한 서울시민이 이메일로 보내줬다고 한다.
그 해 가을 37년만의 귀국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구속, 1심의 징역 7년 선고, 항소심의 주요공소 사실 무죄 선고를 거쳐 1년 만에 출국하기까지 과정을 생각하면 시를 보낸 사람은 참으로 혜안을 가진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송 교수가 2004년 독일로 돌아간 후 3년 만에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 를 출간, 그 해 ‘열병 몰아쳤던 땅’에 대해 이야기했다. 애써 말하기를 꺼리는 조국의 ‘죄책감’을 알고 있다는 듯 먼저 말을 걸었다. 미완의>
공판 진술과, 독일에서 준비해왔으나 당시 급변한 상황에 따라 발표하지 못했던 강연원고도 실었다. 검사와 판사, ‘썩은 내 났던 신문’들과 학자들의 칼럼들에 대한 분석은 실명을 거론해 더 사실적이다.
그러나 “누군가 말을 걸어주면 응수할 수는 있겠으나 나서서 그렇게 하기는 내키지 않았던” 그때 겪었던 자세한 일들은 책의 마지막 대담 형식으로 구성됐다.“내 사건은 그간 내가 맺어 왔던 인간적 관계들의 진정성이랄까 혹은 그 깊이를 들여다보게 해 주었어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이었지요.
한국으로부터 가끔 있던 안부 연락도 그전보다 많이 줄었어요.” 마치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있는 줄 모르고 초청했다는 듯 그에게 전향하면 기소유예가 가능하다고 떠밀었던 사람들은 리트머스 시험지로 걸러졌다.
“아내를 울게 한 것은 조중동도 아니고 검찰과 국정원도 아니었어요. 기자회견을 열어 국적 포기 선언을 발표하기로 결정이 났을 때 아내는 항의하면서 울었지요.” 37년만에 찾은 조국은 국보법의 검을 휘두르며, 한 학자를 구석으로 몰아‘반성하고, 비굴해지고, 자신을 부정할 것’을 요구했고 남편이 그것에 맞서지 못할 때 아내가 울었다.
당시 일련의 사건은 비단 송 교수의 가족만을 울린 것은 아닐 것이다.‘당신은 사실 국화보다는 장미꽃을 더 좋아하지 않느냐’는 머릿속 생각을 증명하겠다는 식의 국보법 공판장면의 충격,‘송두율 교수’라고 기사에 써넣고 데스크가 ‘송두율 씨’로 고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바라보던 기억들…. 송 교수 사건은 당시 법원 담당이었던 기자에게도 ‘이 나라는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빼앗아 버린 패배감으로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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