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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국민은 모르는 그들의 以心傳心

입력
2007.04.1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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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6개 정파 원내대표가 '18대 국회 초 개헌문제 처리' 합의를 앞세워 노무현 대통령에게 개헌발의 유보를 요청한 11일 낮, 우연히 청와대 주변의 유력인사를 만났다. 그는 집권 초기인 것처럼 들떠 있었다.

역대 정권에서 임기 마지막 해에 대통령 지지도가 30%를 넘은 적이 있었느냐, 이는 정권출범 첫 해보다 높고 앞으로 더 올라갈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권이 원칙과 정도로 관철해온 부동산시장 대책과 남북관계 안정화정책이 마침내 열매를 거두고 있다, ….

말을 자르고 물어봤다. 현상이나 지표를 보면 수긍할 만한 얘기다, 그런데 그런 과제들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려면 정치적 분란만 초래할 일은 피해야 하는 것 아니냐, 대통령이 정치권의 개헌유보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으냐.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그런 두루뭉술한 제안은 받기 힘들 것"이라고 답하며 노 대통령의 정치행태를 잘 뜯어보라고 했다.

어떤 정책이나 과제를 임기 중 완성할 수 없다고 해도 이후 '시대적 반동'이나 정략적 계산에 의해 뒤집힐 여지는 남기지 않는다는, '불가역성(不可逆性)'이 대통령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 무모한 정권의 불가역 정책

하지만 그 날 오후에 청와대가 개헌발의 유보 의사와 함께 정치권과의 대화 용의를 밝히는 것을 보고 이번엔 그 양반이 잘못 짚었다고 생각했다. 웬걸, 그의 예상은 결국 맞았다. 각 정파가 16일까지 '진정성과 책임성이 담보된 형태'로 차기 국회에서 개헌하겠다는 당론 채택과 대국민 약속을 하지 않으면 개헌열차는 무조건 발진한다는 청와대의 최후통첩을 들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들끼리 통하는 이심전심이 국민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느냐는 것이다. 사실 작금의 사회적 관심사는 정권이 과연 한미 FTA의 국회비준까지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또 국민연금법 개정 등 국가미래와 관련된 제도개혁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가, 부동산 시장을 포함한 경제 전반과 북핵 폐기로 집약되는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는 지속될 수 있는가 등에 맞춰져 있다. 국민들이 이심전심으로 개헌의 시대성을 이해하기엔, 말 그대로 '먹고 사는' 문제가 주는 스트레스가 과중하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1월 초 원 포인트 개헌 추진 방침을 공식화하며 자신의 국정운영 방식을 '멀티 태스킹(multi-tasking)'이라고 규정했다. 정보화 시대의 대통령은 개헌도 하고 경제도 살리고 안보도 지키고 민생도 해결하고 외교도 잘 하고 남북관계도 발전시키는 다중작업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 문제로 국정의 초점을 흐리지 말라는 비판에 대한 반론이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최근 지적처럼, 당시 이 같은 언행을 '아집ㆍ맹목ㆍ광신'이라고 욕했던 보수언론과 반노세력들이 한미 FTA 협상 타결 후 돌연 '집념ㆍ뚝심ㆍ배짱'이라고 말을 바꾸었으니 노 대통령은 자신의 작업방식에 한결 뿌듯함을 가질 만하다.

흥미롭게도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한 미국 대학의 연구결과를 인용,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하는 멀티 태스킹은 일 효율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위험한 상황을 낳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멀티 태스킹으로 미국에서 발생하는 경제손실이 연간 6,500억 달러에 달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정보화에 일찌감치 눈떠 소프트웨어도 직접 만들 수준의 능력을 가진 노 대통령에게 이 기사는 실없는 소리이겠으나, 멀티 태스킹이 대단한 무기가 아님은 분명하다.

● 겸손과 배려로 민생 돌봐야

이 시점에 노 대통령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비록 대선 때 내놓은 일자리와 성장률 등의 민생 공약을 지키진 못했지만 임기 말까지 최선을 다해 국민들의 곤궁한 삶을 돌보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을 조금도 허투루 쓰지 않게끔 정부를 매조지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소수정권으로서 참으로 멀고 험한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할수록, 새로운 이 약속엔 겸손과 배려, 연민이 묻어나야 한다. 자신들끼리 역사적 평가 운운하며 말장난 같은 멀티 태스킹에 집착하는 것은 스스로를 덫에 빠트리는 격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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