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10시9분 국회 본회의장. "땅 땅 땅!" 본회의 개의를 알리는 의사봉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과 10여분 지난 뒤부터 몸을 달싹이던 의원들은 하나 둘씩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동료 의원들의 대정부질문이 막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한 의원은 "지역구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가 봐야 한다"고 이유를 댔다. 다른 의원은 "보궐선거를 지원해 주기로 했다"는 말만 남겼다. 출석 확인만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불량 학생들 같았다.
각 당 지도부도 '학업에 뜻이 없어' 보였다. 강재섭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대전 서구을 보궐선거 후보 사무실을 찾았고, 정세균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도 이날 대구를 방문, '통합신당 창당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그 시각 본회의장에서는 국민연금법, 교육 3불 정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이를 꾸준히 지켜본 의원은 전체 296명 가운데 30명 가량에 불과했다. 반면 한덕수 총리와 관련 장관들은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국회 직원은 "의원들은 4ㆍ25 재보선 지원과 대선과 총선 준비 때문에 지역으로 달려가고 있다"며 콩밭에 마음이 가 있는 의원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썰렁한 국회'는 대정부질문이 진행된 사흘 내내 계속됐다. 일부 의원은 대선주자들의 해외 출장과 지방 순회에 따라다니느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국회 속기록에는 사흘간 각각 269명, 261명, 269명의 의원들이 출석한 것으로 돼 있다. 하루 중 아무 때나 얼굴만 비쳐도 출석으로 인정하는 제도 때문이다.
이 통계는 의정활동 평가를 하는 시민단체 등에 제공된다. 의원들이 '전략적 조퇴'를 선호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치부 신참 기자로서 의원 세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성 정치부 기자 j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