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4칸짜리 영국식 주택에 사는 주부 우위칭은 매일 신 고딕풍의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연다.
윈스턴 처칠,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동상을 지나며 ‘영국 가게’로 장을 보러 간다. 가게 앞에서는 왕실 근위병 복장을 한 안내인이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건넨다..
영국 런던에 사는 주부의 일상이 아니다. 중국 상하이(上海) 인근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상하이 송장(松江)구에 있는 이 마을의 이름은 ‘템즈 타운’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빅토리아 건축과 튜더 왕조 시대의 건축 양식을 섞어 만든 이 마을을 보고 “너무도 똑같다”고 감탄했다.
교회는 물론 각양 각색의 저택, 템즈 강변과 같은 작은 운하, 운하 옆의 고색창연한 주택, 길거리의 신호등 등 모든 것이 영국의 그것들을 ‘복제’ 했다. 영국 관광 안내 사진들을 연상케 할 정도이다. 영국의 아트킨사가 설계한 1만명 수용 규모의 이 마을은 50억 위안(6,000억원)을 들여 건설됐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부동산업자 허칭(何靑)은 “우리는 일반적인 현대적 건축을 원하지 않고 역사와 문화 등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건축을 원한다”고 말했다.
영국식 마을 뿐만이 아니다. 사하이 도심에서 북쪽으로 28㎞ 정도 올라가면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 북구의 마을을 복제한 북구 마을이 나오고, 서쪽으로 가면 독일 마을이 있다. 체코, 스페인 마을을 복제한 마을도 건설되고 있다. 주택난을 겪고 있는 상하이가 주변 지역에 위성도시를 건설하면서 이런 복제마을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상하이 밖에서도 확인된다. 난징(南京)에는 인도네시아 발리풍의 별장촌과 이탈리아풍 빌라촌이 있고, 항저우(杭州)에는 베니스와 취리히를 본뜬 마을이 있다. 한때 신의주 특구를 추진했던 양빈(楊斌)은 선양(瀋陽)에 네덜란드 마을을 건설한 바 있다.
복제마을은 남들과 다른 그 무엇을 찾는 부자들과 신흥 중산층을 겨냥한다. 거액의 입주비를 감당할 수 있는 중국 부자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함께 만족시키는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업자는 “명품이라 할 수 있는 외국 유명도시에 사는 것은 자신이 명품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욕망도 충족시켜 준다”고 말했다. 베니스 마을에 살기 위해 입주 계약을 마친 후쥔은 “친구들 6명도 함께 입주했다”며 “베니스 마을에 살면서 삶의 지위도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풍조에 대한 반론도 적지않다. 상하이시 은퇴 공무원 위런저는 “서구 스타일의 주택이 왜 인기를 얻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중국인이지 외국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전통을 버리는 행태가 결국 스스로 식민화하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업자들과 입주자들은 “미국 사람들도 비 미국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결코 이런 행위가 전통 파괴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위칭은 “템즈 타운에 매우 만족하지만 중국을 떠나 살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취향과 허영, 경박함과 개성, 이런 것들은 원래부터 백지 한 장 차이인 듯하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