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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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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세상

입력
2007.04.1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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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달동네'인 서울 봉천동에서 초ㆍ중학교를,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던 신림7동 난곡에서 고교를 다녔다. 뺑뺑이를 돌려 난곡 N고교 배정이 확정되는 순간, TV를 지켜보던 친구들의 안색이 하얗게 변해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N고교는 전수(專修)학교에서 인문계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학생들의 태반이 달동네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매를 들어가며 헌신적으로 가르쳤고, 학생들은 밤 늦도록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서울대 46명 등 이른바 SKY대학에 100명 이상 합격했다. 이 중에는 '학교 수업에만 충실'했던 달동네 출신도, 철거민 자제도 있었다.

모교 선생님께 작년 대입 성적을 여쭤봤다. 서울대 2명을 포함, SKY대 합격자가 10명도 안됐다. "아무리 기를 쓰고 가르쳐도 서울대에 두세 명 보내면 성공이야. 학교 수업만 열심히 들어서 명문대에 가는 시대는 끝났어"라고 하소연했다.

부모의 경제력이 학력으로 연결되는 시대이다 보니 변두리지역 학교들이 옴짝달싹 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당국의 조사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월소득 600만원이 넘는 부모의 자녀는 월소득 100만원 미만 부모의 자녀보다 20배 이상 명문대 진학률이 높다. 고소득(월 500만원 이상) 가정 학생은 저소득(200만원 이하) 가정 학생보다 수능 점수가 30점 가량 높다. 특목고의 법조인 학부모는 전체 직업인구 중 법조인 비율보다 28배, 의료계 학부모는 8배나 많다.

같은 자립형사립고라도 부모의 소득에 따라 진학률에 차이가 나고, 같은 강남도 대형 평형과 소형 밀집지역간 대입 성적에 차이가 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대학들이 양질의 사교육으로 무장된 학생들을 선호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연세대 등 사립대학은 특목고 출신을 더 많이 잡기 위해 수능 중심의 선발을 확대키로 했고, 국립인 서울대조차 수시모집을 활용해 '과학고생 붙들기'에 가세했다.

사실상 특목고가 명문대로 가는 지름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려 혈안이 돼 있다. 하지만 '학교 교육만 충실히 받은' 학생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특목고에 들어가기 힘든 게 현실이다.

중학교 교사들은 "사교육 없이 특목고 합격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대학생 수준의 영어실력은 기본이고 미국 교재로 고교 수학을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지역 6개 외고 신입생 대상 조사에서 A외고는 99.98%가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B외고는 특목고 전문학원 출신이 82%에 달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SKY대는 1등과 꼴찌를 한 교실에 몰아넣는 붕어빵 교육이 사교육 광풍의 주범이라고 강변한다. IMF체제 이후 특목고와 자사고를 계속 늘리는 등 효율성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강화되면서 사교육 시장이 비대해진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고교평준화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았는데도, 이들 대학은 본고사와 고교등급제 실시까지 요구하고 있다. 확실한 줄 세우기를 통해 당장 고시 합격률과 취업률을 높여줄 최상위 학생들을 뽑겠다는 이기심의 발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학들은 선발경쟁이 아니라 교육경쟁에 나서야 한다. 사교육으로 키워진 성적 우수자에게만 집착할 게 아니라, 다양한 소질과 가능성을 지닌 학생들을 뽑아 잘 가르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육 불평등의 해소는 '빈곤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고재학 사회부 차장대우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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