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현대차는?
SK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격 전환키로 함에 따라 4대 그룹 가운데 삼성과 현대ㆍ기아차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LG그룹은 2003년도에 이미 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바꿨다.
삼성과 현대ㆍ기아차측은 당분간 현재의 순환출자 구조를 바꿀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SK의 결단을 계기로 지배구조를 더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여론몰이가 형성될 가능성을 잔뜩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경제개혁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들은 두 회사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우선 삼성의 공식 입장은 현 단계에서 지배구조의 변화를 전혀 모색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룹 고위 관계자는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다"며 "어떤 지배구조든 훌륭한 경영성과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에버랜드_삼성생명_삼성전자_삼성카드_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측은 이 같은 구조가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긴 한국적 기업지배형태로 인식하고 있다.
국내 어느 대기업도 상호출자나 순환출자를 통해 자본을 형성하기 않고 단일회사로 반도체 등 첨단산업이나, 철강 조선을 비롯한 대형 장치산업 투자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설명이다. 또 외국인 투자비중이 50%가 넘는 상황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를 예방하고 경영권 안정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삼성도 내부적으로는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면밀히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구조개선법(금산법)이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된데 이어 올해중 예상되는 생명보험사 상장이 가시화할 경우 현재의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를 축으로 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SK만 해도 삼성에 비해 지주회사 전환이 쉬울 수 있다"며 "삼성전자의 경우 지분 1%를 확보하는데 조 단위의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대ㆍ기아차그룹 역시 "지주회사로의 전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따라서 개괄적 수준의 전환방안 조차도 연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려는 이유는 정몽구 회장 일가의 경영권이 비교적 견고하게 유지되는 구조인데다가, 지주회사 전환에 막대한 수 조원의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현대ㆍ기아차그룹의 핵심 3개 계열사에 대한 정 회장 지분은 현대모비스 7.91%, 현대차 5.19%에 불과하지만, 순환출자를 통해 현대모비스와 현대차에 대한 실제 지배력은 각각 32.48%와 26.05%에 달한다. 자사주와 우호 세력 지분을 감안할 경우, 현재로서는 정 회장 일가의 경영권은 아주 공고한 셈이다.
현대제철의 고로(高爐) 사업에 5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도 지주회사 전환이 어려운 점이다. 핵심 계열사 지분을 50% 이상 보유한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추가로 지분을 매집해야 하는데,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시민 단체들은 순환출자형의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들은 대주주가 소수의 지분을 갖고 전횡을 일삼거나, 특정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등의 불공정 경쟁, 계열사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로 이어지는 줄도산의 문제 등을 안고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이 같은 문제들은 현재의 법과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경련 이승철 전무는 "가장 좋은 지배구조는 효율적이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형태"라며 "지주회사든 순환출자이든 기업문화와 처한 환경에 적합한 지배구조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기업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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