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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상영 부부의 맛이야기] 묵음 김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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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상영 부부의 맛이야기] 묵음 김치 요리

입력
2007.04.1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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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집집마다 통과의례처럼 하는 게 있다. 바로 김장을 담그는 일이다. 뭐 요즘 젊은이들은 시중에서 파는 김치를 선호하는데다 장년층도 사 먹는 김치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하는 분위기이니 김장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에게 김장은 참 힘들면서도 즐거운 작업 중 하나다.

아직도 친정어머니 덕분에 우리는 시판되는 김치를 접해본 적이 없다. 항상 깊은맛이 살아 있는 김치를 먹고 있으니 타고난 복을 받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 김장 날에는 마치 동네잔치처럼 신나고 행복했다. 여느 아이보다 김치를 더 좋아했고, 김치 한 접시만 있으면 뜨끈한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던 나였으니 이보다 더 경사스러운 날이 어디 있었겠는가.

김장을 하기 며칠 전부터 나는 엄마와 함께 시장을 돌며 배추가 속은 꽉 찼는지, 무는 알이 토실토실하게 잘 여물었는지 살피면서 김장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가 동네 친한 아주머니들과 ‘10일은 상영이네, 며칠 뒤엔 민아네 그 뒤엔 아무개네’ 해 가며 날짜를 맞춰 품앗이할 준비를 하는 모양이 어린 내 눈엔 재미있게만 보였다.

드디어 김장하는 당일이 되면 아침 일찍부터 아주머니들이 오셔서 소란스러웠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잠에 빠진 나를 불러 일꾼처럼 부리기 시작했다.

큰 고무 대야(당시만 해도 의심할 것 없이 ‘다라이’라 불렀던)에 전날부터 푹 절여놓은 배추를 옮겨 담고 한쪽에서는 무채 양념을 하며 간을 보는 모습들. 그 옆에서 하나라도 더 먹겠다고 알짱거리던 내 모습. 김장 날이 되면 항상 생각나는 장면이다.

파릇파릇한 4월에 느닷없이 김장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요즘이 김장 김치가 제대로 묵은 맛을 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막 담근 겉절이를 한겨울에 먹는 것도 일품이지만 냉장고에서 농익어 시큼함이 코를 찌르는 봄날의 김장 김치도 그에 뒤지지 않는 독특한 맛이 있다. 겨울에 담근 배추김치, 갓김치, 동치미의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는 4월이 왔다는 이야기이다.

몇 해 전 일 문제로 한 김치회사 대표와 만난 적이 있다. 그의 고향은 전라도로 각종 젓갈이며 장류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분의 음식 철학 또한 재미있었는데, 지금이야 많은 이들이 패스트 푸드를 선호하고 각종 패밀리 레스토랑이며 퓨전 음식이 난무하지만, 결국 한국 사람 입맛의 종착역은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추억과 기억에 사로잡혀 잊을 수 없는 맛을 좇게 되는데 어렸을 적 엄마가 해주던 밥의 기억이 장년층이 되었을 때 되살아난다는 그만의 이론이다. 자연히 외식사업을 하더라도 이런 모토아래 합당한 메뉴를 만들어야 비전이 있다는 게 그의 이야기였다.

나도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나 또한 젊은 나이이기는 하나 한 두 해 지날수록 예전에 어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 맛을 흉내 내며 요리를 하게 된다. 그 맛의 기억을 뒤따르는 것이다.

그 김치회사 대표는 새롭게 김치를 이용한 전문 음식점을 낸다고 했다. 당시 우리 부부에게 품평해달라며 선보인 요리 중 4월 이맘 때 먹어야 가장 맛있다는 묵은 갓김치 꽁치찌개와 김치전을 잊을 수가 없다.

매년 4월 중이면 우리 부부는 이 추억의 맛을 따라 그 가게를 찾곤 했다. 그 집의 꽁치찌개는 다른 집과는 사뭇 다르게 묵은 갓김치를 넣어 푹 고아내듯 끓여낸 게 특징이다.

갓김치의 쌉쌀하면서 시원한 맛이 신선한 꽁치와 함께 어우러져 보통의 꽁치찌개보다 깊고 깔끔한 맛을 낸다. 거기에 갓김치 한줄기를 척 하니 올린 밥을 곁들이면 알싸하면서도 청량한 맛이 그만이다.

꽁치 맛도 근사하지만 이 갓김치의 맛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특별하다. 여기에 묵은 김치로 만든 전까지 한 젓가락 집어 들고 막걸리 한잔을 걸치면 신선 노름이 따로 없을 정도.

가끔은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야식으로 먹어도 잘 어울린다. 지금은 그 김치회사 대표가 김치 만들기에 더 매진하고 싶어하는 바람에 김치 전문점은 문을 닫고 말았다. 더 이상 그 맛을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화창한 4월이 오면 농익은 김치 요리가 생각나는 것은 그가 나에게 선물한 하나의 소중한 추억임이 틀림없다.

생각난 김에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지인들을 집으로 불러 김치 파티나 열어 볼 계획이다. 집마다 처치 곤란인 묵은 김치를 한 포기씩 꺼내 들고 와 김치찌개며 전이며, 김치로 만들 수 있는 온갖 요리를 만들어 신선한 주말 파티를 열어 보는 것은 어떨까.

1. 묵은 갓김치 꽁치찌개

재료:갓김치 500g, 꽁치 1마리, 다진 마늘 1큰술, 양파 50g, 대파 1줄기, 청양고추 1개, 고춧가루 1큰술, 된장 1작은술, 갓김치 국물 2컵, 물 3컵

재료 손질하기

꽁치는 깨끗이 씻어 손질한 후 4~5cm 길이로 토막 낸다.

대파와 청양고추는 어슷썰기, 양파는 채썰어 준비한다.

갓김치 끓이기

뚝배기에 갓김치를 길게 찢어 넣은 뒤 갓김치 국물과 물을 붓고 보글보글 끓인다.

김치가 익기 시작하면 손질한 꽁치를 넣어 끓인다.

양념하기

한번 끓어 오르면 된장을 풀어 넣고 대파, 청양고추, 양파를 넣은 뒤 고춧가루를 풀고 다진 마늘을 넣어 10분간 푹 끓인다.

꽁치가 다 익으면 상 위에 올려낸다.

2. 묵은 김치전

재료 : 묵은 김치 반포기, 밀가루 500g, 김치국물 1컵, 소금 약간

반죽하기

밀가루에 김치 국물을 넣고 소금간을 살짝 한 뒤 조금 묽게 반죽한다.

김치 준비하기

배추는 속을 털어 길쭉하게 찢은 후 물기를 꼭 짜서 준비한다.

지져 내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배추김치 두 장을 펴서 놓고 그 위에 반죽을 얇게 둘러준다.

노릇하게 익으면 접시에 옮겨낸다.

김상영 푸드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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