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이 아닌 최도형이 의료사고를 냈다면 과연 사과했을까. 인간미 넘치는 그라도 양심을 떠나 법적 책임까지 인정하는 사과에 대해선 중압감이 컸을 것이다.
이런 부담 없이 의사가 실수를 인정하도록 규정한 ‘아임 쏘리 법(I’m sorry law)’안이 미국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AP통신이 12일 보도했다.
미국의학협회(AMA)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전체 50개 주의 절반이 넘는 27개 주가 이미 이 같은 법안을 실행 중이고, 9개 주에선 동일한 내용의 법안이 마련되고 있다.
이 법안의 유행에 대해 AP통신은 “의사들이 자신의 실수를 환자에게 즉각적이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과하도록 촉구해온 의료업계 내부 운동이 이루어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아임 쏘리 법’은 말 그대로 치료 이전에 예상치 못한 합병증이나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의사가 환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도록 한 ‘사과법’. 다만 의사의 말이 법정에서 증거로 이용되지 못하도록 면책조항을 단서로 달고 있다.
많은 병원들은 의사들의 이런 사과가 환자들의 분노를 가라 앉혀 의료소송을 줄이고 있다고 인정한다.
미국에선 의료소송의 증가가 의사들의 보험료를 상승시키고 다시 환자 부담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의사들은 이런 소송을 우려해 아예 실수를 인정하지 말라는 훈련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성형외과 전문의 마이클 밀료리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환자와 유대감을 유지하려면 소송에서 불리할 수도 있는 ‘사과의 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년 여성의 처진 눈꺼풀 제거수술을 두 차례 실시했으나 눈꺼풀 높이가 예상과 달리 맞지 않았다. 그는 환자에게 “미안하다”면서 합병증이 나타난 상황을 설명하고 3차 수술을 권했다. 그의 말을 믿고 따른 환자는 지금 상태에 모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아임 쏘리 법’의 면책 문제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의료인 1만8,000명을 고객으로 둔 프로뮤추얼 그룹은 법이 면책을 인정해도 사과하지 말고, 실수(error)나 과실(fault) 주의태만(negligence) 등의 단어도 쓰지 말도록 충고한다.
사과는 양심에 국한되는 말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일부 변호사들도 “의사가 사과하면 그 스스로 자신을 면책할 수 없게 되는 모순이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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