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닭을 주제로 한 작고 예쁜 박물관이 등장했다. 이화여대에서 34년간 가르치다 정년퇴임한 김초강(67)씨가 만든 ‘서울 닭 문화관’이다. 20년 넘게 모은 세계의 닭 미술ㆍ공예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공간이다. 문 연 지 넉 달, 처음 세 달간 ‘닭 표정 엿보기’라는 개관특별전을 한 데 이어 첫 테마 전시로 한국의 ‘꼭두닭과 민화전’을 열고 있다.
아담한 2층 건물 안은 온통 닭 세상. 보이는 데마다 닭이 있다. 서양 앤틱 가구로 꾸민 1층은 상설 전시장 겸 카페. 찻잔, 설탕그릇, 방석과 식탁 매트, 벽과 가구 장식, 심지어 화장실의 휴지곽과 쓰레기통까지 전부 닭 공예품이다. 뽐내는 닭, 점잖은 닭, 귀여운 닭, 씩씩한 닭 등 표정도 참 다양하다. 하얀 청바지 입고 지팡이 짚고 양산 쓰고 산보하는 녀석도 있다.
테마전의 꼭두닭과 민화는 2층에 있다. 꼭두닭은 나무로 깎아서 상여 가마에 올려놓던 장식물. 망자의 저승길이 편안하고 극락왕생하라고 비는 마음을 담은 조각이다. 전시에 나온 꼭두닭은 100년도 더 된 것들이지만, 소박하면서도 과감한 형태와 색채 감각은 현대의 미감에 뒤짐이 없다. 닭 민화는 우리 민화 뿐 아니라 중국, 일본 것도 걸려 있다.
김초강 관장은 “서울 닭 문화관은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 중 하나인 닭을 통해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그래서 이름도 박물관이 아니라 문화관으로 지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닭그림을 선물했어요. 닭의 몸통은 다산, 볏은 벼슬, 볏은 벼슬, 발은 부지런함, 발톱은 무기, 화려한 꽁지깃은 부귀영화의 상징이죠. 서양에서도 닭은 새벽을 알리고 어둠을 물리치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풍향계나 교회의 십자가를 장식하곤 했지요.”
그의 수집품은 3,000점이 넘는다. 그 가운데 가장 많고 가장 아끼는 것이 우리나라 꼭두닭으로 1,000점쯤 된다. 1980년대에 학생들 데리고 강원도 산골로 수학여행을 갔더니, 상여 가마를 쪼갠 장작으로 불을 때서 밥을 지어주더란다.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이 불쏘시개가 돼선 안 되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꼭두닭을 모으기 시작했고, 점차 세계의 닭으로 관심을 넓혔다고 한다. 그렇게 꾸준히 모은 것들을 남들과 함께 보고 공부하고 싶어서 박물관을 차렸다.
전시장이 좁아서 한꺼번에 다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1년에 네 차례 주제별 전시를 통해 소개한다. 꼭두닭과 민화전에 이어 유리닭과 헝겊닭(7월), 나무닭과 닭우표(10월), 닭 생활문화전과 어린이를 위한 전시(내년 1월)를 준비하고 있다. (02)763-9995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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