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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소련 이송/ 한국戰 CIA 비밀문서도 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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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소련 이송/ 한국戰 CIA 비밀문서도 입수

입력
2007.04.1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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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국일보 뉴욕지사는 11일 국군포로의 소련 압송사실을 담은 미 국방부 문서 외에, 한국전쟁 당시 남한 주요 인사들의 납북 상황과 납북 이후 행적을 자세히 수집한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해제 문서도 별도로 입수했다.

CIA의 1951년 8월8일자 ‘만포진 포로에 대한 북한인들의 취급’ 첩보 보고서에 따르면 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독립운동가 정치인 박모씨(1906~?)는 한국전쟁 때 납북된 게 아니라,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을 지휘해 1950년 9월 김규식(1881~1950), 안재홍(1891~1965) 등 남한 주요인사 4,600여명을 서울에서 북한으로 집단 납북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 9월 이전에 북한인들에게 체포되거나 연행된 상당수 한국 주요 인사들은 서울 서대문과 마포 구치소, 충정로 3가 예비취조실에 수감돼 있다가 집단 납북됐다.

보고서는 납북 경위에 대해 “이들 중 4,600명에 달하는 그룹은 서울에서 지혁 인민군 보위국 형사부 서울분견대 부대장과 반장 중 한명인 장서림, 그리고 ‘북남협력위원회(North-South Cooperation Committee)’에서 서울분견대원으로 활동했던 박씨의 지휘 하에 북한군 중대의 호송을 받으며 북으로 끌려갔다”고 적시했다.

보고서는 이어 “납북 도중 어지러운 상황으로 인해 일부 포로들은 총살 당했고, 일부는 탈출해 숫자가 약 3,000명으로 줄어들자, 6~7명이 한 그룹으로 묶여서 이동했다“며 “동두천 철원 수안 상원 평양 그리고 강계를 거쳐 10월19일 만포진에 도착했다”고 적고 있다.

보고서엔 남한 인사들의 납북 이후 행적도 기록됐다. 보고서는 “만포진에서 대다수 포로들은 지역 수용소에 수감됐으나, 가장 중요한 인사들 일부는 압록강 너머로 보내져 ‘만주공안경찰(Manchuria Public Security Police)’에게 넘겨졌다”고 적고 있다.

보고서는 만포진에서 50년 12월 납북인사 중 김규식과 안재홍, 조완구(1881~? ·독립운동가·건국훈장 대통령장), 엄항섭(1898~?·독립운동가·건국훈장 독립장), 김약수(1893~1964·북한 정치인) 등이 목격됐다는 사실을 적고 있다.

보고서는 박씨 외에도 납북인사로 알려진 상당수가 북한측과 ‘협조적 관계’에 있었다는 추측을 제기했다.

보고서는 또 만포진에서 목격된 한국인 주요인사 중 조완구, 엄항섭, 김약수 등에 대해 이전 CIA 보고서를 토대로 ‘자발적 북한 망명’ 사실을 부기해, 당시 북한이 ‘협조적’인 친북인사들도 일단 북한 지역의 수용소에 수감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50년 12월11일자로 된 CIA의 또 다른 첩보 보고서는 50년 10월7일 서울 서대문 구치소에서 출발한 상당수 납북인사들이 평양에 도착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보고서는 50년 7월 서울에서 북한 보위부에 체포돼 평양으로 압송된 뒤 취조를 받고 풀려나 같은 해 10월22일 서울로 돌아온 ‘한미 소사이어티(America_Korea Society)’ 회장 신동기(전 아처 러치 주한 미 군정장관의 비서)의 진술을 근거로 “신동기가 50년 10월10일 평양구치소를 떠날 당시 대한민국 제헌의회 부의장 김동원(1882~?), 조선물산 장려회를 결성한 명제세(1885~?), 작가 이광수(1892~?) 등 서울의 주요 인사들이 그곳에 계속 수감돼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51년 8월11일자 CIA 보고서에는 납북된 한국의 주요 인사들 외에 평안북도 벽동 수용소에 50년 11월 국군포로 1,500명이 수용돼 있다는 첩보와 국군 장교와 상사, 주민, 고교 졸업자들이 사상교육을 위해 만주로 보내지고 있다는 첩보 등이 담겨있다.

또 52년 7월17일자 보고서에는 북한이 정전 후 포로송환을 대비해 협조적인 포로들을 포로송환에서 제외하기 위해 ‘평화소’로 이동시키고 국군장교들은 총살시켰으며, 사병들은 사상교육과 함께 인민군으로 합류시키고 있다는 첩보 등을 기록하고 있다.

미주한국일보 뉴욕지사=신용일기자 yishin@koreatimes.com뉴욕=장인철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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