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사태’의 악몽을 털어버리고, 지주회사 체제로 대전환을 선언했다. SK그룹에서는 이번 지주회사 체제 출범을 ‘제3의 창업’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은 계열사간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분구조를 투명ㆍ단일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SK가 이 같은 선택을 하게 된 것은 그룹을 존폐위기로까지 몰고 갔던 2003년의 SK글로벌 사태를 종결함과 동시에, 글로벌 기업 위상에 걸맞고 시장요구에 부응하는 ‘깨끗한 지배구조’를 갖겠다는 의지로 평가된다.
최태원 회장이 “대한민국 최고의 지배구조를 만들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SK는 11일 최 회장의 워커힐 호텔 보유주식 40.69% 전량을 SK네트웍스에 무상출연함으로써, SK글로벌 사태 당시 채권단과 약속했던 자구프로그램을 모두 이행하게 됐다. 채권단은 다음주쯤 SK네트웍스에 대한 워크아웃 졸업을 공식선언할 예정이어서, SK그룹은 이제 과거를 말끔히 씻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롭게 지주회사 체제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새로 출범할 지주회사 체제의 출발점은 주력사인 현 SK㈜를 △지주회사인 SK홀딩스와 △에너지ㆍ화학부문을 SK에너지화학으로 분할하는 것. 이어 SK홀딩스 밑에 SK에너지화학, SK텔레콤, SK네트웍스, SK E&S, SKC, SK해운, K-Power 등 7개 자회사가 포진하며, SK인천정유 TU미디어 SK가스 등은 손자회사로 자리잡게 된다.
단, 그룹내 주요 계열사인 SK케미칼과 SK건설은 지주회사에 편입되지 않는데, 이는 오너 일가의 소유구조 정리 및 중장기적 분가를 대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최태원 SK회장은 SK홀딩스를 통해 그룹의 양 축인 SK텔레콤과 SK에너지화학을 관리하고, SK케미칼과 SK건설은 SK홀딩스에서 제외해 대주주인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의 몫으로 남겨뒀다. 때문에 이번 지주회사 전환결정은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와 대주주간 교통정리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SK관계자는 “복잡한 지배구조를 단순화해서 회사 가치와 주주 가치를 끌어올리라는 주주들의 요구, 경영효율성 증대, 지배구조의 획기적 진보 등을 위해 이처럼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LG에 이어 SK그룹까지 ‘빅4 그룹’ 가운데 절반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재계는 그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삼성과 현대차가 ‘지주회사’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교수는 “기업지배구조는 기업들이 경영하기 좋은 방향으로 알아서 정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영 투명성은 의사구조 결정과정과 회계장부 처리 등으로 따져봐야지 지배구조로만 평가할 수 없다”며 “정부는 재벌들에게 지주회사 전환을 권유했지만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모든 기업에게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지주회사란
1999년부터 공정거래법상 설립이 허용된 지주회사는 주식의 소유를 통해 다른 회사의 사업 내용을 지배하고, 경영권을 장악하는 회사를 말한다. 자산 총액이 1,000억원 이상 돼야 하며 자회사의 주식 합계액이 자산 총액의 50%를 넘어야 한다.
지주회사는 투자와 사업이 분리돼 책임경영체제를 다질 수 있으며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재벌들의 일반적인 지배구조인 계열사간 순환출자의 경우 한 회사가 부실하면 그 회사가 지분을 갖고 있는 다른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치며 그룹 전체의 부실을 가져 오지만, 지주회사는 문제가 발생한 기업만 차단하는 방식으로 그룹 전체의 동반부실을 막을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기업투명성이 향상돼 주식가치도 올라가게 된다.
현재 금융회사 중에는 우리, 신한, 한국투자, 하나금융지주 등이 있으며, 기업에선 LG, GS, 태평양, 세아 등 모두 31개의 지주회사가 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