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열흘 앞으로 닥쳤다. 당초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와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에게 이끌리며 좌우 양강 구도로 흐르던 선거판에 중도정당 연합체인 프랑스민주동맹의 프랑수아 바이루 후보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2차 투표에서 맞설 두 후보가 불확실하게 됐다고 외신은 전한다.
그간 프랑스 대선에 대한 관심은 과연 이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나올지에 쏠렸다. 세골렌 루아얄이 집권한다면, 그것은 여성의 정치적 진출이 사뭇 뒤쳐진 프랑스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일이 될 테다.
● 이민자2세의 야심
그러나 지금 가장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는 사르코지가 엘리제궁의 새 입주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프랑스 역사에 굵은 획을 그을 것이다. 그는 프랑스인들이 흔히 '그루터기 프랑스인'이라 표현하는 토박이가 아니라 이민자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사르코지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뒤 혁명을 피해 헝가리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사업가였다. 사르코지가 집권한다면, 프랑스는 역사상 처음 이민자2세 대통령을 맞게 될 테다.
물론 사르코지 정치학에는 누추한 구석이 많다. 그 자신 그루터기 프랑스인이 아니면서도 사르코지는 극우파에 가까운 인종주의를 드러내며 이민자들에게 적대적인 정책을 지지하고 실천해 왔다.
12년 전 대선 때는 제 정치적 아버지였던 시라크에게 등을 돌리고 지지율이 가장 앞서던 에두아르 발라뒤르 편에 서는 정치적 리얼리즘을 보여주었다.
(예상을 뒤엎고 시라크가 집권하는 바람에 그의 리얼리즘은 잠깐 실패한 듯 보였지만, 그는 시라크와 결별함으로써 우파 내에서 시라크의 맞수가 되는 데 성공했다.) 네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편모 밑에서 자라며 가난한 자의 처지를 겪어보았으면서도, 사르코지는 자본가들의 대변인 노릇을 제 정치노선으로 삼았다. 그는 제 주변부 정체성을 거칠게 부정함으로써 주류사회의 리더가 된 것이다.
또 사르코지가 저 자리에 다다른 것을 프랑스 사회가 내세우는 '톨레랑스'의 온전한 증거로 삼기도 어렵다. 헝가리인 아버지와 유대계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사르코지는 적어도 백인 가톨릭이고, 그 점에서 프랑스 주류 사회가 그를 크게 꺼려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만일 무슬림이라면, 또는 가톨릭 신자라 할지라도 흑인이나 아시아인이라면, 오늘날 그의 처지는 저리 탐스러울 수 없을 테다.
그렇다 해도 프랑스 대통령 자리를 넘보고 있는 이 이민자2세의 라이프스토리는 우리에게 적잖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12년 전 에두아르 발라뒤르의 정적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르코지의 정적들도 그의 '불순한 피'를 거론하지는 않는다.
(발라뒤르 역시, 비록 가톨릭 신자이긴 하지만, 터키계 프랑스인이다.) 사르코지가 엘리제궁을 차지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유럽의 백인 기독교 사회에서는 '프렌치 드림'의 모델로 찬양될 것이다. 얄궂게도, 사르코지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나라는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이긴 하지만.
● '코리언 드림'을 위하여
한국에서라면 어떨까? 나날이 늘고 있는 귀화 이민자의 자식들에게 이런 식의 '코리언 드림'이 가능할까? 대통령 자리를 넘보는 것은 그만두고, 고위 공무원이 되겠다는 꿈 정도라도 이들이 지닐 수 있을까? 1970년대에 프랑스 여성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을 지낸 스위스 로잔 출신의 터키계 프랑스인 프랑수아즈 지루처럼 말이다.
3세, 4세에 이르러서라도 그것이 가능할까? 먼 나라 출신은 그만두고 문화적 동질성이 비교적 큰 중국계 한국인, 일본계 한국인, 베트남계 한국인들에게라도 말이다.
인종주의가 세계 최악의 수준일 나라에서, 공직 후보자의 '출생의 비밀'이 선거 캠페인의 연료가 되고 출신지역이 사활적인 정치 자산이나 부채가 되는 사회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 대답을 긍정적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이젠 너무 때묻은 단어가 돼버린 '진보'를 거드는 일일 테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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