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미국으로 이민 온 이삭 오수(51)는 고국 가나에 두고 온 네 아들을 잊은 적이 없다. 삐뚤빼뚤한 영어로 예쁘게 꾸민 아이들의 카드와 편지를 받을 때마다 그는 아이들을 데려다 행복한 가정을 꾸릴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다. 마침내 시민권을 얻었을 때, 이민국은 아이들을 데려오려는 그에게 친자확인을 위한 DNA 검사를 제안했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네 아들 중 첫째만이 친자인 것으로 판명됐다. 국무부는 친아들인 장남만을 미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허용했다. 아내와는 사별했지만, 그의 인생과 가족에 대한 믿음은 산산조각났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부가 해외 가족이나 친척을 초청하려는 신규 시민권 취득자에게 혈연관계 입증을 위한 유전자 검사를 확대하면서 이민자 가정 파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10일 보도했다.
유전자 검사가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신원 증빙서류가 부족한 전쟁피해국이나 개발도상국 이민자들에게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어 전쟁과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이들의 ‘어메리칸 드림’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자메이카 출신의 시민권자 타매라 곤잘러스(31)는 지난해 고향에 있는 아버지를 초청하기 위해 DNA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검사 결과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그는 극심한 정체성 혼란에 빠졌다.
DNA 검사가 폭로하는 것은 배우자나 부모의 부정만은 아니다. 메릴랜드에 살고 있는 시에라리온 출신의 한 남성은 최근 유전자 검사를 통해 고국의 내전이 그들 가정에 새긴 깊은 상흔과 마주쳐야 했다. 전쟁 내내 떨어져 지낸 아내는 반군들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아내는 수치심에 진실을 숨긴 채 아기를 낳아 길렀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2004년 현재 친자 확인을 위한 DNA 검사는 미국에서 약 39만건이 실시됐다. 그 중 7만5,000건이 이민자들의 혈연관계 입증을 위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15~20%는 유전자 불일치로 판명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낳은 정보다 무서운 게 기른 정. 유전자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혈연의 정을 끊을 수 없는 이민자들은 미국 시민권자는 16세 이하의 아동을 입양할 수 있는 법 규정을 활용해 입양을 ‘가장’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데려오고 있다.
“왜 형만 데려가고 우리들은 데려가지 않냐”고 묻는 세 아들에게 차마 진실을 밝힐 수 없었던 오수 역시 미 법무부에 입양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재혼한 아내와 넓은 아파트로 미리 이사한 그는 보는 사람마다 아빠를 꼭 빼닮았다던 아이들의 커다란 갈색 눈을 떠올린다.
한편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9일 애리조나주 국경지역을 방문, 불법이민자 구제 등을 골자로 한 포괄이민개혁법을 올해 안에 반드시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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