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0교시·야자·학원…24시간이 짧기만한 高3의 하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0교시·야자·학원…24시간이 짧기만한 高3의 하루

입력
2007.04.11 23:36
0 0

대한민국 고3의 지상 과제는 대학 입학이다. 부모님 등 주위에서도 명문대에 가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독려한다.

고3은 하루 15시간 이상 책과 씨름하느라 다람쥐 쳇바퀴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대학 간판이 남은 일생을 좌우한다는 믿음이 유일한 버팀목이다.

18세 혈기왕성한 나이지만 상황을 거스를 자신은 없다. 인생의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렵기도 하지만 ‘내일은 해가 뜬다’는 희망에 두 눈 부릅뜨고 졸음을 쫓는다.

4당 5락(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라는 말처럼 고3은 잠과의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내신과 수학능력시험, 논술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과 싸우는 고3학생 2명의 일상을 따라가봤다.

● 수원 창현고 신재봉군

오전 5시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떴지만 눈꺼풀은 무겁다. “일어나라”는 엄마의 외침에 겨우 눈을 떴다. 아침을 먹고 헐레벌떡 뛰어나가 노란색 통학 버스에 올라 탔다. 전쟁이 시작됐다.

7시20분 0교시 수업이다.‘교육방송(EBS) 강의에서 수능 시험을 많이 낸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정책 때문에 3년 전부터 월·수·금요일에는 EBS 강의 녹화 테이프를 본다. 꾸벅꾸벅 조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 깨우는 선생님의 손길에도 단호함보다는 애처로움이 묻어난다.

11시50분 점심을 먹고 노력반 자습실에 갔더니 친구들이 ‘3불 정책’(대학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을 이야기 중이었다. 한 친구가 “3불이 없어지면 우리 같은 지방 학생이 불리하다”며 3불 찬성을 외쳤다.

다른 친구는 “서울대는 논술 비중을 높이고 고려대와 연세대는 수능만 잘 봐도 입학할 수 있다는데 논술을 준비 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나도 논술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1월부터 과외를 받고 있지만 좋아졌다는 느낌은 안 든다.

오후 2시 6교시 경제 시간이다. 내신이 안 좋은 반면 수능 모의고사 점수는 상대적으로 높아 수능에 올 인 해야 하는 친구들이 “사탐(사회탐구)에서 경제를 선택하지 않았다”며 다른 과목 문제집을 풀고 있다. 하지만 내신과 수능 수준이 비슷한 나로서는 내신, 수능, 논술 어느 것 하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죽음의 트라이앵글 안에 갇힌 느낌이다.

오후 6시 저녁을 먹으러 학교 식당에 갔더니 봉사활동을 같이 한 친구가 “그만 가겠다”고 했다. 주요 대학이 학생생활기록부의 비교과 영역 비중을 높인다고 해 지난해 9월부터 용인의 정신지체 여성 보호기관에 한 달에 2번 쉬는 ‘놀토’에 봉사활동을 다녔다. 처음 10명 갔지만 고3이 되고서 하나 둘 빠지더니 이제 3명 남았다. 사실 나도 계속 가야 하나 고민스럽다.

밤 11시30분 저녁 자습이 끝났다. 같은 반 친구가 고3 끝나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하고 싶은 거야 많지만 한두 가지는 꼭 하고 싶다. 그 생각에 이 힘든 고3을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다. “피아노와 기타는 꼭 배울 거야.”

● 숙명여고 조은선양

10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숙명여고 3학년 1반. 긴장 또 긴장해야 하는 고3이지만 점심시간만큼은 달랐다. 친구들과 재잘대고 깔깔대며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은 역시 꿈 많은 소녀다웠다.

조은선(18)양은 고3이 되면서 휴대폰을 없앴다. 수다떨기와 문자 메시지 보내기가 취미였지만 “휴대폰 때문에 1년 망칠 것 같다”고 휴대폰과의 이별을 작심했다. 부모님은 밤 늦게 다니는 딸 걱정에 불안해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맘 편할 수 없다”고 했다. 4교시 종이 울리자 교실은 다시 긴장 모드로 바뀌었다.

오후 3시30분 6교시가 끝나자 하교 준비를 한다. “물론 집에 가는 건 아니죠. 한 반에 7, 8명 빼고 다 학원 가요”라는 조양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강남 학생처럼 중학교 때부터 학원 3, 4개를 다녔다. 지금도 국, 영, 수, 사회탐구 학원을 빠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조양은 요즘 “학원에 너무 의지하는 것 아닌가”하는 고민에 빠졌다. 학원들은 “오기만 하면 모든 걸 완벽하게 해준다”고 선전하지만 그게 다 자기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논술 학원을 당분간 안 다니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책 읽고 토론하는 학원에 다닌 그는 논술학원에서 기출 문제를 풀어보면 여러 학생 답안이 비슷해 놀랐다고 한다. 그는 “논리적이면서도 창의적으로 글을 써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데 차라리 혼자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더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오후 9시 학원 수업을 마친 조양은 집 근처 독서실로 향했다. 입시 전략을 묻자 그는“아직은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다들 수시 1학기 모집이 없어져 기회를 한 번 잃었다는 불안감이 크다”며 “1, 2학년 때는 내신만 신경 쓰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수능이다 논술이다 그러니 헷갈린다”며 오락가락한 입시정책을 비판했다.

조양은 “비교?영역 점수를 높이려고 외국어는 물론 법ㆍ경제 경시대회까지 나가는 학생들도 많다”며 “경시대회 준비 학원을 다닐 정도로 점수 따기에 목을 맨다”고 말했다.

다음날 새벽 1시30분 독서실 버스에 올랐다. 조양은 “비록 지금 이 길이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고3이 된 이상 죽어라 하는 수밖에 없잖아요”라며 웃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신보경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