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일명 자금시장통합법ㆍ자통법) 제정이 법안 내용 중 곁가지에 불과한 증권사에 대한 지급결제 기능 부여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12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주최 공청회를 앞두고 한국은행이 11일 그 동안의 침묵을 깨고 자통법 반대 의사를 공식 천명하면서, 자칫 1997년 한은법 개정 이후 잠복해있던 정부(재정경제부)와 한은 간 갈등이 다시 표면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재경부와 증권업계, 한은과 은행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자통법 관련 논란을 4대 쟁점별로 정리해 본다.
1.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 이율 경쟁으로 이득
증권업계는 증권사에 대한 지급결제 기능 부여가 은행이 그동안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올린 수익을 소비자들에게 돌려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증권사들이 보통예금과 유사한 기능의 자산종합관리계좌(CMA)를 통해 연 4%의 금리를 주고 있는 만큼 지급결제 기능이 도입되면 은행이 연 0.3%의 이자만 지급하며 고수익을 누려온 보통예금 상품에 경쟁체제가 도입돼 그만큼 국민에게 돌아가는 수익도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은행업계는 증권계좌에 지급결제 기능이 허용되면 소비자들의 부담이 더 많아질 거라고 반박한다. 지금은 증권사 제휴은행의 가상계좌를 이용해 송금이나 자동 입출금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지만 증권계좌 지급결제가 허용되면 증권ㆍ은행계좌 분리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보통예금 이용자가 대거 증권계좌로 넘어오면 증권사도 마땅한 자금 운용처를 찾지 못해 보통예금과의 금리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2. 금융 시스템이 불안해지나
● 전산 안전하다지만…
한국은행과 시중은행들은 증권사들의 전산망이 은행에 비해 부족하고, 안정성도 뒤떨어지기 때문에 증권사가 은행 지급결제망에 참여했다가 지급불능 상태라도 빠질 경우 그 영향이 금융권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는 전산망 안정성은 과거 사례를 볼 때 오히려 은행보다 앞선다고 일축한다. 결제 안정성에 대해서도 증권사들은 "예탁 자금은 전액 투자자 명의의 주식 등 현물이나 단기 금융상품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오히려 은행 예금보다 안정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또 증권사 계좌의 지급결제를 대행하게 될 증권금융은 일일 계좌이체 한도액의 100%를 지정은행에 담보로 제공할 계획인 만큼 일부 증권사가 지급불능 사태에 빠져도 지급결제에는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3. 기존 금융제도에 혼란 오나
● 지급결제 고유업무 논란
은행들은 지급결제는 은행 고유 업무이며, 이 업무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급준비금을 한은에 의무적으로 예탁해야 하지만, 증권사 계좌는 이 같은 의무가 면제되기 때문에 결국 은행과 증권사 간 형평성이 깨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은행의 지급준비금 의무를 면제하거나 증권사에게 지급준비금 의무를 지워 사실상의 은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 결국 기존 금융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는 게 은행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재경부는 은행 고유 업무는 여ㆍ수신이며, 지급결제망은 공공재 성격을 띄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은행에 증권업의 고유 업무인 국공채 인수나 펀드 판매가 허용되고 있듯이, 증권사에도 지급결제 업무가 허용돼야 오히려 형평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4. 금산(金産) 분리 원칙 무너지나
● 예탁금 계열사 지원 못해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가 허용되면, 삼성처럼 보험사와 증권사를 소유한 산업자본에 사실상 은행업을 허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보험사의 여ㆍ수신 업무와 증권사의 지급결제 업무를 합하면 사실상 은행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재경부는 이 같은 의구심을 한마디로 "지나친 상상력"이라고 일축한다. 금산분리의 대원칙은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면 일반 국민의 저축을 부당하게 계열사 지원에 사용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데, 증권사는 고객 예탁금으로 계열사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는 것이다.
또 은행계좌는 단순 지급결제뿐만 아니라, 수출입 절차 대행 등 훨씬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어 계열사 지원을 위해 주거래계좌를 증권계좌로 바꾸려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자본시장통합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은 증권거래법 등 기존의 자본시장 관련 법률 6개를 통합한 것이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자본시장 환경에 맞춰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ㆍ보완해 금융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 만들어졌다.
금융투자상품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영역별 구분이 엄격한 현행 금융업 제도의 틀을 기능 중심으로 재편하며, 투자자 보호제도를 강화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다양한 금융상품이 등장하고 금융회사의 투자자 보호의무가 한층 강화한다.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이 통과할 경우 이르면 2008년부터 시행된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