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이 올린 경상수지 흑자가 무려 1,7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미국이 8,50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였다고 하니 양국 사이의 격차가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두 나라의 환율 흐름이 경제상식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재작년 평균 110엔이었던 엔화의 달러에 대한 환율이 지난해에는 116엔으로 올라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나라의 돈 가치가 오히려 떨어버린 결과가 됐다. 혹자는 이를 두고 미ㆍ일 간의 밀약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즉,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등을 통해 엔화의 급속한 강세를 용인하였는데, 일본 당국자들은 이것이 바로 일본의 그 유명한 부동산 버블과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한 단초였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된 지금까지도 엔화 약세에 매달리고 있는 반면, 미국은 일본에게 플라자 합의를 강요한 데 대한 보상으로 최근의 엔화 약세를 용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대외자금 유출입 상황을 보면, 이른바 밀약설의 근거는 희박해 보인다. 무릇 환율이라는 것은 국내외에 들고나는 모든 돈의 흐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아무리 수출이 잘된다고 해도 돈이 다른 경로를 통해 해외로 빠져 나간다면 환율은 상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본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0.4%에도 못 미친다고 하니, 많은 일본 사람들이 해외의 고수익상품으로 눈을 돌릴 만도 하다.
실제로 2005년 한 해 동안 일본이 가지고 있는 해외자산에서 발생한 이자나 투자소득이 1,000억 달러에 달해 상품수지 흑자폭인 945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돈이 해외로 나가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의 엔화 약세는 실물경제적으로는 미스터리일지 몰라도 금융거래까지 포함해서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하지만 금융거래는 주변 여건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일본의 금리가 올라간다든지, 아니면 미국 금리가 내려간다든지 하면 일본을 떠난 돈들이 급작스럽게 되돌아올 수 있으며, 이 경우 엔화 환율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
특히 현재 1조 달러를 넘는다고 알려져 있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해소와 더불어 국제투자자금이 일본으로 몰릴 경우에는 엔화가 급속한 강세로 돌아설 수 있으며, 세계 주식시장이나 자산시장도 한바탕 요동을 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런 점에서 엔 캐리 트레이드를 비롯한 세계 자금흐름의 변화를 예의주시 할 필요가 있다.
안희욱 한국은행 조사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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