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24일 동안 우리 경제 전체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향방을 놓고 떠들썩할 때 금융권은 상대적으로 평온을 유지했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1997년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이미 주요 영역에서 선진국 수준까지 개방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방된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다국적 금융기관에 맞서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을 통해 외환위기 당시의 줄도산 위기를 딛고 10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다.
국내 은행의 경우 지난 한해 총 13조5,000억원대의 순이익을 올리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보험 등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한 실적을 올렸다. 세계 초일류 기업의 주요 기준 중 하나인 연간 순이익 10억 달러(약 1조원)를 넘는 국내 기업이 지난해 모두 15개였는데 그 중 은행 등 금융기관이 7개나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경제에서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위상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전자 등 수출 주력 기업의 내수 연관성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수출이 활발해도 국내 경기 회복은 더디기 만한 현 상황에서 대표적 내수 산업인 금융이 선전하고 있다는 것은 향후 우리 경제의 발전 전략을 수립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발표한 ‘금융산업의 경제 기여도 분석’에 따르면 금융산업이 국민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의미하는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0.9486으로 나타났다.
금융산업에서 1,000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다른 산업에서 948원 가량의 추가 부가가치가 생산된다는 의미다. 반면 전체 산업의 평균 유발계수는 0.7538에 그쳤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우리나라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의 진정한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을 금융산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국내 은행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활발한 인수ㆍ합병을 통해 외형과 수익성, 건전성 면에서 이미 국제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었다. 지난해 국내 은행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1.12%로 영국(0.99%)이나 일본(0.78%)를 앞질렀다. 지난해 대출이 크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실여신 비율은 오히려 감소하는 등 전반적인 건전성 지표도 양호하다.
하지만 첨단 금융 기법으로 무장한 다국적 금융기관과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HSBC나 씨티은행 등은 본국 외에서 벌어 들이는 수익이 각각 80%, 43%를 차지하는 반면 국내 은행은 수익의 97%를 국내에서 얻고 있다. 그나마 거두어들이는 해외 수익도 교민이나 해외로 진출한 국내 기업을 상대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자본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제도와 경험의 미비로 매물로 대기하고 있는 국내 알짜 기업의 인수ㆍ합병 경쟁에서 늘 조연에 머물고 있는 것도 하루 빨리 극복해야 할 숙제다. 급속히 성장하는 이웃 중국 금융시장 진출도 시급하다.
한국의 금융산업은 내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을 통해 또 한차례 도약을 위한 성장통을 겪어야 한다. 자통법은 지금까지 유지되던 은행, 증권, 보험 등의 업종간 벽을 없앨 뿐 아니라, 지금까지 새로운 금융상품을 허가할 때 까다롭기만 하던 금융 당국이 심사를 대폭 완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2009년 한미 FTA 발효 후 미국의 다양한 첨단 금융 상품이 국내에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국내 금융기관이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의 상품개발능력에 맞서기 위한 역량을 키울 준비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96, 97년 급격한 개방과 규제 완화, 개방된 환경을 극복하고 오늘의 위상을 만들었듯이, 앞으로 닥칠 시련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극복 시간이 짧아질수록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도래도 그 만큼 빨라질 것이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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